[사설] 군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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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방부가 어제 발간한 '2000년 국방백서' 에서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보는 기존 시각을 유지한 것은 현실적이고도 당연한 조치다.

화해.협력과 튼튼한 안보태세는 우리 대북정책의 두 기둥에 해당한다. 특히 안보에는 어설픈 예단이나 낙관이 절대 금물이라는 점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감안한 주적 개념 유지는 타당하다.

그러나 백서에 나타난 정부의 일부 국방정책에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군은 속성상 가장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데, 정부 내 대북협력담당 부처의 입장에 지나치게 경도(傾倒)된 대목도 눈에 띄는 것이다.

한 예로 백서는 국군 포로 송환 문제에 대해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 문제 해결 차원에서 북한측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고 명시했다.

다른 곳도 아닌 군 당국이 국군 포로 문제를 이산가족 차원에서 해결한다고 할 때 북에 남아 있는 당사자.국내 가족들을 포함해 얼마나 많은 국민이 납득할지 의문이다.

국군 포로와 납북자를 일반 이산가족과 동일시하는 정부측 입장은 며칠 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서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 는 이유로 접수를 거부당한 적이 있다.

또 지난달 30일 동진호 납북자의 모자 상봉에서 보듯 납북자를 이산상봉과 혼동할 경우 북의 정치적 선동에 놀아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국방백서만 해도 '이산가족 방식 해결' 은 거론되지 않았다. 오히려 '국제기구와 제3국을 통해 생존 여부를 확인하고 송환을 촉구하는 등 국제적 송환 여론 조성에 힘쓰고 국내 민간기구.단체 등과도 긴밀히 협조하겠다' 고 밝혔는데 올해는 이런 문구가 빠져 있어 대단히 유감이다.

올해 백서가 지난 6월의 남북 공동선언 이후 달라진 환경을 반영해 '대북 포용정책' 을 '화해 협력정책' 으로 바꾸고 '벼랑 끝 전술' 같이 북한을 자극할 만한 표현을 일부 삭제한 것에는 기본적으로 수긍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처럼 직함을 달아 표현한 것도 이해할 만한 변화다. 그러나 '북한의 대남정책' 항목의 일부 표현들은 군이라는 입장을 감안하면 역시 '북한의 변화' 에 지나치게 낙관하는 인상을 풍긴다는 점을 지적해두고자 한다.

가장 신경쓰이는 대목은 신세대 장병에 대한 정신교육 분야다. 새 백서는 '우리 군의 대비태세가 완벽할 때만이 남북 공동선언도 실제로 이행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인 화해 협력과 평화통일도 가능하다' 고 명시했다. 우리도 백서가 표방한 관점에 동의한다.

앞으로 북한이 근본적인 자세 변화를 보일 때까지는 현재의 주적 개념이 엄정히 유지돼야 하며 장병교육도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설혹 남북간 작은 정세변화나 갈등이 발생하더라도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 군만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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