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쌍용동 ‘느티나무 마을 도서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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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쌍용동 주공9단지 아파트 내 느티나무 마을 도서관에서 한 자원봉사자가 아이들에게 종이접기를 가르치고 있다. [느티나무 마을 도서관 제공]

천안 쌍용동에 자그만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통상 도서관은 사서나 공무원들이 나와 일을 보지만 이 곳은 주민들이 책 대여부터 건물관리까지 도맡아 한다. ‘우리 동네 도서관’인 셈이다. 도서관에서 만난 주민들에게 자랑을 들어봤다.

고은이 인턴기자

천안시 쌍용동 주공9단지 아파트에 사는 박순미(34·여)씨는 얼마 전 큰 선물을 받았다. 아파트 단지 내에 도서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도서관이 생긴 뒤로 박씨의 생활은 ‘확~’ 달라졌다. 예전까진 큰 길 건너에 있던 쌍용도서관을 이용했지만 이젠 더 이상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오가는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만 따로 단지 밖 도서관으로 보내기에 영 불안했던 마음도 사라졌다. 이제 오후가 되면 박씨는 두 아이와 함께 마을 도서관으로 자연스레 발걸음을 향하게 됐다.

쌍용동 주공9단지 아파트 내 ‘느티나무 마을 도서관’. 지난해 12월 24일 문을 열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도서관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부르고 있다. 도서관 이름은 단지 내에 있는 350여 년 된 느티나무에서 따왔다.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결정한 이름이다. 주중엔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문을 활짝 열고 주민 누구나 반갑게 맞아준다. 9단지 입주자대표회의와 노인회, 푸른천안 21에서 힘을 합쳐 만든 주민들의 도서관이다.

개관 두 달만에 1500권 넘어

느티나무 마을 도서관은 어린이 특화도서관이다. 유아와 어린이들을 위한 책들이 가득하다. 책은 두 차례에 걸친 ‘마을도서관 건립 책 모으기 행사’에서 모았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보지 않게 된 책들을 여기저기에서 기증 받은 게 1500여 권이 넘었다. 기증은 지금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어 자고 나면 소장 권수가 늘어난다. 도서관 자원봉사자 김현미(38·여)씨는 “집에서 잠자는 책들을 개관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들 보내준다. 앞으로도 꾸준히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도서관 관리는 아파트 주민 6명이 돌아가며 맡았다. 아이들을 챙기고 책을 정리하며 도서관 전체를 관리한다. 이웃들을 위해 선뜻 자원봉사자로 나선 것이다. 6명 모두 지난해 9월부터 도서관 코디네이터 교육과정을 들으며 준비했던 덕에 도서관을 관리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진 않다고 했다. 김현미씨는 “집에만 있는 것보다 나와서 애들 챙겨주는 게 훨씬 재미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혼자 집에 두기 불안했던 맞벌이 엄마들에게도 느티나무 도서관이 있어 안심이 된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항상 도서관에 머무르며 아이들을 옆에서 지켜봐 주는 자원봉사자들이 단지 내 우리 이웃이기 때문이다.

영화상영·종기접기 등 강좌

느티나무 마을 도서관의 특징 중 하나는 딱딱한 책상과 의자 대신 푹신한 소파가 있다는 점. 살짝 떠들어도 괜찮다. 온돌 바닥에 누워서 뒹굴어도 된다. 도서관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한 분위기 때문에 아이에게 소리 내서 책을 읽어주는 엄마도 많다. 초등학교 2학년 딸과 자주 도서관에 온다는 임미선(41·여)씨는 “이제는 집에 있으면 오히려 편하지 않다. 아이를 데리고 당연히 마을 도서관에 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아이들의 반응도 좋다. 겨울방학 내내 도서관에 살았다는 이소영(9)양은 “책이 많은 곳에 오니 머리가 똑똑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도서관에선 주민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모두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주민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가장 인기가 많은 건 매달 넷째 주 금요일 오후 7시에 마련되는 영화상영. 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상영한다. 지금까지 ‘업’ ‘아주르와 아스마르’ 등이 상영됐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손잡고 와서 스크린 앞에 옹기종기 앉아 보는 영화 반응이 최고다. 영화 상영 20~30분 전부터 자리가 꽉 찰 정도다. 종이 접기와 한자 교실도 인기다. 모두 주민들이 자처해 단지 내 아이들의 선생님이 됐다. 종이 접기 교실은 두루마리 휴지 케이스 같은 실용적인 소품을 만들어 주부들에게 인기가 좋다. 한자 교실은 아파트 노인회의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로 아이들이 한자를 친근하게 접할 수 있다.

느티나무 마을 도서관은 어린이도서관이지만 동시에 주민들의 사랑방이기도 하다. 주민들끼리 차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사는 얘기를 나눈다. 서로에 대해 묻고 알아가는 삶의 공유장소다. 주부들끼리 영어 동아리를 만들어 스터디도 하고 있다. 김현미씨는 “느티나무 도서관을 시작으로 다른 아파트에도 마을도서관이 퍼져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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