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도 단속하는 나라가 카지노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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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껌도 마음대로 못 씹는 나라 싱가포르에 카지노가 처음 문을 연다. 그것도 말레이어로 ‘평화와 고요함’이란 뜻을 가진 ‘센토사’란 섬 위다. 싱가포르 정부는 8일 홈페이지를 통해 “말레이시아 켄팅 그룹의 카지노 영업 개시를 6일 승인했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 대기업인 켄팅 그룹은 44억 달러를 들여 ‘리조트 월드 센토사’를 완공해 1월에 일부 오픈했다. 프리미엄 호텔과 동아시아 최초의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갖췄다. 핵심사업은 카지노였다. 그러나 정부가 카지노 영업 개시 승인을 늦게 해주는 바람에 호텔만 우선 공개했다.

허가가 난 카지노는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춘절(음력설) 전 개장한다. 크록포즈 호텔 지하에 1만5000㎡(약 4550평) 규모로 조성된 카지노는 바카라·블랙잭·포커 등을 즐길 수 있는 200여 개의 게임 테이블과 500여 개의 슬롯머신을 갖췄다. 카지노 종업원만 2300명이 넘는다. 싱가포르 2호 카지노도 준비 중이다. 4월에 오픈하는 마리나 베이 리조트 역시 카지노가 노른자위다.

카지노 개점이 화제가 된 것은 이를 허용한 나라가 싱가포르여서다. 싱가포르는 ‘껌도 마음껏 못 씹는 나라’라 불릴 정도로 규제가 엄격하다.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는 거리가 더러워진다는 이유로 1992년부터 껌의 수입과 판매를 금지해 왔다. 적발되면 벌금도 물렸다. 그러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계기로 2004년 의료용 껌만 약국에서 판매할 수 있게 됐다. 그것도 신분증을 제시하는 사람에 한해서다.

그 정도로 깐깐한 싱가포르 정부가 카지노 사업을 허용한 이유는 뭘까. 2006년 싱가포르 정부는 침체된 관광산업을 부흥하기 위해 국내에서의 카지노 개점을 허용했다. 림 흥키앙 무역·산업장관은 카지노를 허용할 당시 “2개의 카지노가 본격 가동되면 관광 수입과 고용 창출로 최대 1%의 국내총생산(GDP) 상승효과(약 25억 달러)를 일으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웃인 마카오의 경제 성장도 자극이 됐다. 마카오는 1999년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된 후 중국 정부의 공격적인 관광 장려책에 힘입어 카지노를 중심으로 한 관광산업을 활성화했다. 그 결과 99년 740만 명이었던 방문객 수는 지난해 3020만 명을 넘어섰다. 이 기간에 마카오의 1인당 GDP는 3배 이상 늘었다. 실업률도 6.3%에서 3.7%로 떨어졌다.

뒤늦게 카지노 사업에 뛰어든 싱가포르가 마카오에 버금가는 카지노 국가로 성장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마약과 부패가 없는 보수적인 이미지를 고수해 온 나라에서 카지노 사업에 대해 얼마나 완화된 잣대를 들이댈지 의문”이라고 분석했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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