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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똥과 자동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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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말은 하루에 똥을 11㎏이나 싼다. 마차가 주된 탈것이던 시절, 도시에선 악취가 코를 찔렀다. 뉴욕에서 집집마다 현관까지 높다란 계단을 쌓은 것도 인도에 넘쳐난 똥물 때문이었다. 말똥을 의제로 19세기 초 뉴욕에서 국제회의까지 열렸지만 해법을 찾지 못했다. 말똥과의 전쟁이 막을 내린 건 때마침 자동차가 양산되면서다.

자동차는 대신에 사고의 위험을 몰고 왔다. 사상 첫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 사고도 첫 단추를 끼웠다. 18세기 중반 증기로 가는 세 바퀴 차를 만든 프랑스 공병 장교 니콜라 퀴뇨는 언덕길에서 시운전을 하다 벽을 들이받았다. 차내에 브레이크조차 없던 시절 얘기다.

업체 간 경쟁이 불붙으며 자동차는 점점 구색을 갖춰 나갔다. 그러나 안전을 위한 배려는 늘 뒷전이었다. 안전벨트만 해도 1950년 전후에야 도입됐다. ‘베트남전의 설계자’ 로버트 맥나마라 전 미국 국방장관이 ‘안전벨트의 설계자’로 나섰다. 군복을 벗고 포드로 자리를 옮긴 그는 충돌사고로 인한 부상과 사망을 줄이려면 항공기처럼 안전벨트를 매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의 말에 따라 포드는 안전벨트를 옵션으로 제공하기 시작했지만 소비자 반응은 의외로 차가웠다. 자동차가 위험하단 인식을 심어준 탓이다. “맥나마라가 안전을 팔지 몰라도 시보레는 차를 판단 말이야!” 헨리 포드 2세는 대놓고 불평했다고 한다(스티븐 레빗 등, 『슈퍼괴짜경제학』).

변호사 출신 소비자운동가 랠프 네이더가 65년 출간한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은 차(Unsafe at Any Speed)』가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그는 날카로운 금속제 계기판, 헐렁하게 연결된 문짝 등 불안전한 구조 때문에 과속하지 않아도 사고 시 사상률이 높다고 폭로했다. 차가 너무 비싸지거나 포드 사례처럼 소비자들이 외면할까 봐 극도로 미온적인 업체들의 행태도 비판했다. 당시 차 한 대당 디자인 개선엔 700달러를 쓰면서 안전 보강엔 불과 23센트를 썼다는 지적이다.

이후 거세진 소비자들의 압력과 관련법 제정으로 자동차의 안전성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그런데 최근 도요타에 이어 혼다·포드 등이 줄줄이 리콜에 나서며 불안감이 다시금 높아졌다. 전자장치가 늘며 언제든 결함이 나올 수 있다는데 정확히 뭐가 문제인지 모르니 더 두렵다. 게다가 업체들은 여전히 안전보다 이익에 연연하는 모양새다. 못 미더운 자동차 대신 차라리 마차의 말똥 냄새가 속 편할지 모르겠다.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