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러시아' 안팎에 과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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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7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승전 60주년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과거 소련이 유럽을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시켰다”고 역설했다. [모스크바 AP=연합]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9일 제2차 세계대전 승전 60주년 기념행사가 초대규모로 펼쳐진다. 세계 53개국 정상들이 참석하고 행사비로만 2억 달러(약 2000억원) 이상을 쏟아 부은 유례없는 행사다. 우리나라 노무현 대통령도 행사 참석을 위해 8일 오후(이하 현지시간)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 사상 최대 규모 기념행사=이번 행사는 지금까지 세계 각국이 치른 2차대전 관련 기념행사 중 최대 규모다. 세계 주요국 정상 중엔 유일하게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만이 국내 정치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승전행사는 9일 오전 10시 참가국 정상들이 붉은광장 레닌묘 앞에 마련된 중앙연단에 자리를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약 1시간 동안 전투기가 동원된 입체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기념 연설을 한다. 곧 이어 각국 정상들은 붉은광장 옆 무명용사의 묘로 이동해 헌화하고 기념촬영을 한다. 낮 12시부터 크렘린 대궁전에서 각국 정상들과 참전용사 등 약 1000명이 참가한 가운데 공식 리셉션이 열린다.

축하행사와 별도로 참가국 정상간 개별회담도 연쇄적으로 이루어진다. 8일 오후 모스크바에 도착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날 저녁 푸틴 대통령과 만찬을 겸한 정상회담을 가졌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 노무현 대통령 등과 유럽국 정상들은 9일 공식 리셉션장에서 푸틴 대통령과 별도의 회담을 개최할 예정이다.

◆ 축제분위기 들뜬 모스크바=모스크바는 온통 축제 분위기로 들끓고 있다. 시내 곳곳엔 승전을 기념하는 대형 포스트가 나붙고 붉은색과 주황색 축하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7~9일 사흘 동안 맑은 날씨를 유지하기 위해 항공기들을 동원, 하늘에 특수 화학 물질을 살포하는 비구름 제거 작전까지 펼치고 있다. 체첸 반군 등의 테러에 대비한 보안조치도 철통같이 이루어지고 있다. 모스크바 전역에서 4만여 명의 경찰과 군인이 삼엄한 경비를 펼치는 동시에 전투기 20여 대가 모스크바 주변 상공을 초계비행하고 있다. 시내 주요 도로의 차량통행이 통제되고 통행증이 없는 일반인들은 아예 도심 진입이 금지됐다.

◆ 큰 잔치 벌인 이유='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가 크다. 푸틴의 러시아가 소련 붕괴와 개혁 과정의 혼란을 극복하고 소련 시절 강대국의 지위를 되찾아 가고 있음을 널리 알리겠다는 것이다. 또 승전국과 패전국의 지도자들을 모두 초청, 화해의 무대를 만듦으로써 국제질서와 세계평화 유지에 애쓰는 러시아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동서냉전 탓에 지금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2차대전에서 러시아의 역할을 널리 선전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 소련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약 27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프랑스가 54만, 영국이 40만, 미국이 30만 명 정도의 인명 손실을 입은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희생이다. 독일군에 맞선 소련군의 성공적 항전은 2차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끈 주요 원인이 됐다고 러시아는 믿고 있다.

모스크바=유철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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