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북한 문제 대통령이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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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전 대통령(右)이 13일 오후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의 예방을 받고 얘기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이 13일 오후 김대중 전 대통령(DJ)을 찾았다. 문희상.배기선.정장선 의원과 함께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에 간 것이다.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김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대북특사 역할'을 거론한 이튿날이다. 빠른 템포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주변정세로 얘기가 시작됐다. 김 전 대통령은 "누가 되든 미국 대선 후 한반도 문제가 급물살을 탈 테니 주의를 기울여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미국에 대해 유의할 점 두 가지와 전달할 메시지 두 가지를 충고했다. "첫째, 미국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동맹이다. 둘째, 미국이 우리 국민의 의사에 맞지 않는 결정을 할 때 어떻게 (미국을) 설득할 것이냐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또 "우리는 미국과 친구라는 것, 그러나 만만치 않은 원칙이 있다는 것을 (미국이) 알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핵문제와 관련,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풀고 안전보장을 해야 하는데 이는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이 의장은 "특사 문제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전날의 대북 특사 얘기를 꺼냈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 도움이 된다면 상의에 응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현직 대통령이 중요하다. 북도 나와 합의해선 책임질 수 없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해야 책임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 내부의 시선은 단순하지 않다. 여당 대표와 전직 대통령의 의례적인 만남으로만 보지 않았다. 이날 이 의장은 내년 초 열린우리당이 주최하는 '동북아 평화와 한반도 문제'란 주제의 포럼에서 개막연설을 맡아줄 것을 김 전 대통령에게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열린우리당 행사에 DJ의 참석을 부탁한 것이다.

전국정당과 지역구도 타파라는 목표에 집착했던 여권은 지난 4월 총선을 전후해 의도적으로 DJ와의 거리를 유지해 왔다. 그런 여당이 적극적으로 DJ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한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지지율 하락 등 정국이 열린우리당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개혁입법의 추진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열린우리당 고위 관계자는 "흩어지고 있는 전통적 지지층을 재결집하기 위해서는 DJ 지지세력과의 민주대연합밖에 없다"면서 "이 대목에서 김 전 대통령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또 미국 대선 이후 유동성이 커질 한반도 안보상황을 헤쳐나가는 데 DJ의 능동적 역할이 중요하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고 노벨 평화상으로 국제 사회에서 권위와 영향력이 큰 DJ의 위치 때문이다. 여권 핵심 인사는 "남북관계를 둘러싼 김 전 대통령의 노하우를 현 정부가 적극 활용하면서 그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는 인식이 여권 내부에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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