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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으로 배우는 과학 학습

중앙일보

입력


손이 닿는 순간 녹기 시작한다. 사람체온과 비슷한 녹는점부터 달콤함 때문에 일어난 전쟁의 역사까지 그 자체로 모두 훌륭한 학습소재가 되는 것. 바로 초콜릿이다. 임하영(서울 행현초 6)양과 어머니 신성애(43)씨가 발렌타인데이를 앞두고 초콜릿 공장을 직접 방문했다.

녹는점·어는점 과학원리 활용해

“초콜릿은 물을 싫어해요. 중탕(물 등이 담긴 용기에 간접적으로 열을 가해 데우는 방법) 도중에 물이 튀면 작품이 실패한답니다.” 지난 3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위치한 쥬빌리 쇼콜라띠에 초콜릿 실습실. 임양이 장민석 쇼콜라티에(초콜릿 제조전문가·강사)의 지도로 ‘템퍼링’작업을 진행 중이다. 템퍼링은 초콜릿의 광택과 좋은 식감을 내기 위해 온도를 높였다 낮추는 과정을 반복하는 작업을 일컫는다. 섭씨 33~34도 사이에서 녹기 시작하는 초콜릿을 섭씨 29~32도 사이의 온도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온도를 높여준다.

정 강사는 “템퍼링은 굉장히 정확한 수치의 온도를 요구하는 과학적 작업”이라며 “이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초콜릿의 재료가 제대로 혼합되지 않아 나중에 완성된 초콜릿의 부위마다 맛이 제각각이 된다”고 말했다.

임양이 정성껏 저은 액체 초콜릿의 온도를 온도계로 재자 섭씨 43도가 나왔다. “이렇게 높은 온도가 섭씨 27도까지 내려가려면 한참 기다려야겠네요.”라는 임양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장 강사는 갑자기 대리석 조리대 위에 초콜릿을 좍 쏟아부었다. 액체 상태의 초콜릿이 대리석 위에 빠르게 퍼지는 모습에 깜짝 놀라는 임양에게 장 강사는 “뜨거운 초콜릿의 온도를 빨리 내리기 위한 방법”이라며 “이렇게 하면 초콜릿 작업을 하기에 최적의 온도인 섭씨 29~32도 사이로 쉽게 맞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템퍼링을 거친 초콜릿은 가나슈(초콜릿의 속재료)를 코팅하거나 모형틀에 넣어 그대로 굳힌다. 모양을 잡아 굳힌 초콜릿 위에 글씨를 장식할 때는 미술 작업 원리 중 하나인 ‘전사(轉寫)’기법이 동원된다. 투명한 비닐에 카카오 버터로 인쇄한 글씨를 굳기 직전의 초콜릿에 살짝 붙였다 떼어내면 글씨는 남고 비닐만 벗겨진다. 일종의 판박이 원리다.

열대지방 기후·식민지 정책과 연관있어

모양이 완성된 초콜릿은 냉동고에 넣어 굳기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정 강사는 카카오 함량에 따른 초콜릿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우리가 흔히 먹는 밀크 초콜릿은 초콜릿의 주 재료인 카카오의 함량이 20% 내외밖에 되지 않는다. 대신 설탕과 그 외 첨가물이 많이 함유돼 있다. 임양이 “화이트초콜릿엔 카카오가 얼마나 함유돼 있나요?”라고 묻자 정 강사는 고개를 저으며 “전혀 들어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화이트 초콜릿은 초콜릿의 주 재료인 카카오 원액과 카카오 버터 중, 카카오 원액을 제외하고 카카오버터와 기타 첨가물로만 만들어진 제품”이라며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카카오 함유율이 0%인 화이트 초콜릿에는 법으로 ‘초콜릿’이란 명칭 자체를 쓰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고 알려줬다.

완성된 초콜릿 조각을 접합시키는데는 어는점의 원리가 이용된다. 접착할 면의 초콜릿을 살짝 녹인 뒤 둘을 붙이고 냉각 스프레이를 뿌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쉽게 떨어지지 않고 은은하게 광택도 나 보기에도 좋다. 장 강사는 “초콜릿은 식품이기 때문에 접착하거나 색을 칠하는 것 같은 단순한 장식에도 모두 초콜릿의 특징을 활용한다”고 말했다.

손에서 쉽게 녹지 않는 초코볼에도 녹는점의 원리가 숨어있다. 알록달록하게 코팅된 초코볼의 바깥 부분은 설탕으로 이뤄져 있는데, 설탕은 녹는점이 초콜릿보다 높기 때문에 손에서 쉽게 녹지 않는다. 그는 “과학원리와 예술이 융합된 작업이 초콜릿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임양은 “카카오 열매를 실제로 보고, 미세한 온도차로 초콜릿의 품질이 결정된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며 “집에 가서 오늘 배운 초콜릿 만드는 과정을 적고 관련된 중학교 교과를 찾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신씨는 “귀족들의 전유물로 소비되다가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에 대중화된 초콜릿은 역사적으로 함께 공부할 관련 교과가 풍부하다”며 “평균온도가 섭씨 20도 정도인 열대지방에서 주로 자라는 카카오나무의 특성은 중학교에서 공부하는 세계지리와 연결하고, 사치품이었던 카카오 열매를 얻기 위해 프랑스가 일으켰던 식민지 전쟁은 세계사와 함께 연관해 학습하면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설명]임하영양이 장민석 쇼콜라티에와 함께 대리석 조리대위에서 초콜릿을 식히는 템퍼링 작업을 하고 있다.

< 이지은 기자 ichthys@joongang.co.kr / 사진=김경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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