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푸 선물세트 만들다 ‘매직캡’ 발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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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현대백화점은 이번 설에 ‘칡소’ 선물세트를 내놨다. 축산담당 바이어가 농가에 들러 소를 살펴보고 있다. [현대백화점 제공]

2006년 2월 생활용품업체 애경의 명절 선물세트 전담 태스크포스(TF)는 샴푸 때문에 애를 먹었다. 선물세트용으로 따로 만든 납작한 샴푸 용기에는 눌러 짜는 펌프 기구를 넣을 수 없었기 때문. 당시 팀원들이 짜낸 아이디어가 ‘매직캡’이다. 팀원이었던 민동운 디자인센터 대리는 “용기에 맞추려다 보니 여닫을 수 있으면서도 새지 않는 ‘원터치’ 뚜껑 매직캡을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매직캡으로 특허까지 받았다.

애경이 개발한 ‘매직캡’. 샴푸를 짠 뒤 손가락의 힘을 빼면 거꾸로 한 상태에서도흘러내리지 않는다.

그런데 왜 샴푸 용기를 납작하게 만들어야 했을까. 대목인 명절엔 경쟁이 치열하다. 이때 중요한 게 포장과 진열. 민 대리는 “상품을 ‘넓게’ 펼쳐놔야 시선을 끌 수 있다. 그래서 선물세트 상품의 90%를 정품보다 작고 납작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명절 선물세트 가격을 정할 때부터 유통업체의 전략이 들어간다. 이상구 CJ제일제당 상무는 “선물세트에 들어갈 상품을 골라놓은 뒤 이를 합쳐 가격을 정하는 방식이 아니다”며 “선물세트의 가격부터 먼저 정해놓고, 이에 맞춰 상품을 추린다”고 말했다.

상품은 까다롭게 정한다. 몇 차례 심사를 거친다. 유현석 애경 브랜드마케팅팀 과장은 “소비자 트렌드와 주부 평가단 선호도를 조사해 인기 상품으로 구성한다”며 “사내 직원·바이어 품평회를 통과한 선물세트만 시중에 내놓는다”고 말했다.

다른 변수에도 신경을 쓴다. 과일 값이 그렇다. 유 과장은 “과일 작황이 좋으면 값이 떨어져 잘 팔린다”며 “이 경우 과일 선물세트와 비슷한 가격대의 다른 선물세트는 판매가 줄어들 것이므로 미리 생산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먹을거리 파동’에도 대비한다. 유 과장은 “구제역이 발생하면 한우 선물세트 가격이 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업체마다 전담 TF를 두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브랜드매니저, 디자이너, 생산·마케팅·물류 담당자 등 10여 명의 TF를 상시 운영하고 있다. 명절 선물세트가 이 회사 생활용품사업 부문 연 매출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 유통사업부 박영걸 과장은 “지난해 2월 팀을 구성해 1년 내내 준비한다”며 “생산이 한창일 땐 일손이 달려 외부 인력을 추가 고용하고, TF 팀원들이 나가 밤새 세트를 조립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TF는 지난해 10월 추석 판매가 끝나자마자 설 선물세트를 준비했다. 소비자 동향을 분석해 한우 선물세트의 테마를 ‘칡소(칡덩굴 모양 얼룩소)’로 잡았다. 하지만 전국에 300여 마리밖에 없어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권순건 정육담당 바이어는 “전국의 우시장·농가를 돌아다니며 수소문하던 중 전북 완주·김제 농장에서 네 마리의 칡소를 찾아 계약을 따냈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점포마다 TF를 가동하고 있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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