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다 느끼는 한국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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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호 15면

한국인이 삶의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다양한 조사 결과가 있다. 실제로 외국인을 만날 때마다 한국인들이 전체적으로 불만이 많다는 걸 느낀다. 영국 BBC방송이 발행하는 잡지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정욕(lust)이 많은 나라 1위에 꼽혔다고 한다. 국민 1인당 포르노산업에 대한 지출액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이것만으로 정욕이 많은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욕망의 분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분위기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한국인의 심성이 원래 그렇다기보다는 유교적 이데올로기 때문에 억압되었던 욕망의 고삐가 갑자기 풀린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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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실험에 의하면 도덕성이 높은 사람들이 오히려 생활의 만족도가 높고, 긍정적인 자세를 갖고 있다고 한다. 비교적 부패하지 않았던 세종·영조·정조 시대에 문화가 발흥했고, 엄격한 청교도 정신으로 무장했던 개척시대의 미국이나 캘빈의 종교개혁 이후 국민에게 높은 윤리의식을 요구해온 스위스, 또 유교윤리국가인 싱가포르가 훌륭한 발전을 이뤘던 것도 그 증거가 될 것이다. 거짓말과 허언, 공사를 구별 못하는 행동을 죄의식 없이 일삼는 지도자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일반인들의 불만과 소외감은 당연히 커질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혼란으로 인한 낮은 자존감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동양적인 신체에 대한 불만족감은 그만큼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내적인 불만을 반영하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고, 서구지향적 상업주의에 물든 매스미디어에 현혹되어 몸과 마음을 학대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지 못하니 불행감도 커질 수 있다.

서열과 줄서기를 강요하는 문화도 한 원인이다. 통일신라시대의 과거제도부터 지금까지 한국인들이 치르는 엄청난 시험들은 맨 앞에 선 사람이나 통과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 실패감을 느끼게 한다. 오죽하면 개그맨이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 하겠는가. 물론 적당한 경쟁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약이 되지만 지나친 시험 중심의 서열 매기기나, 정신노동과 신체노동을 차별하는 전통은 고학력자의 과잉이나 무한 경쟁 같은 각종 사회적 부작용과 신경증을 유발한다.

서로에 대한 공감 부족도 한 요인이 될 것이다. 내란이 일어난 나라에서는 피아가 서로를 잔인하게 강간·폭행·살해를 해도 상대의 아픔은 공감하지 못한다. 나와 다른 상대를 서로 보듬어야 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물리쳐야 할 ‘악’으로 보는 사회는 지옥이나 다름 없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한국에서는 극우와 극좌뿐 아니라 세대와 계층 간의 대립이 전시처럼 폭력적으로 변질되는 것을 관찰하게 된다. 심지어는 강자와 약자로 나뉘어 아이들도 언제든 먹을 것을 갖다 바친다는 빵셔틀이니, 왕따니, 진따니 하면서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며 조폭 흉내를 내고 있다.

사회지도자들의 역량과 성숙한 교육이 이와 같은 한국인들의 불편한 현상에 대해 처방을 해 주어야겠지만, 윤리나 나눔에는 별 관심이 없고 돈과 경쟁에만 모든 가치를 두는 개인과 집단을 만날 때마다 과연 한국인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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