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미소’도 상품, 감정노동자의 세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감정노동
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
이가람 옮김
이매진, 336쪽, 1만7000원

큰 빌딩 정문 리셉션 데스크에서 방긋 웃으며 손님을 맞아주는 안내직원, 백화점 주차장 앞에서 주차권을 교부해주는 도우미, 모터쇼에서 미끈한 신차에 기대 웃음을 던지는 나레이터 모델…. 이들은 ‘육체노동자’일까, ‘정신노동자’일까. 적지 않은 체력을 요하니 육체노동일 법 하면서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수반하니 정신노동일 듯도 하다. 이에 대해 저자가 내린 정의는 ‘감정노동’이다. 같은 범주 안에서 다른 노동자와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웃음·표정 등 내면적인 부분인 만큼, 이들 직종은 ‘감정노동(emotional labor, emotion work)’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감정노동은 임금을 받고 판매되기 때문에 교환가치(exchange value)를 가진다. 그래서 감정이란 것은 일반 상품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도 따른다. 이런 경제법칙은 대표적인 감정노동자라 할 수 있는 항공사 승무원의 사례에서 잘 나타난다. 승무원의 미소는 기내에서 제공되는 가장 중요한 서비스 중 하나다. 그런데 미국에서 1970년대 이후 이런 ‘미소’ 서비스는 빠른 속도로 위축됐다. 마치 제조업체 공장에서 혹독한 근로조건을 이기지 못해 파업이 일어나듯,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인위적인 서비스에 대해 승무원들의 집단 ‘태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런 미소 탓에 생기는 눈가의 주름은 이들에게 산재(産災)와 같았다.

이처럼 책 속에는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상품화돼 왔는지에 대한 분석이 담겨있다.

김필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