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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이 좋다] "남도의 넉넉한 마음에 먹거리 인심까지 푸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얼마전 전라도에서는 음식과 판소리가 단풍을 만나 화려한 빛깔과 더불어 그 맛과 신명을 한껏 떨쳤다.

'낙안 음식축제' '광양 전어축제' '영산포 홍어.젓갈축제' 와 함께 '보성소리축제' 등 단풍과 음식과 소리가 한판 푸짐하게 어우러졌다.

지난주 서울에서 소설을 쓰는 후배가 첫 전라도 여행길에 나를 찾아왔다. 이름난 작가들의 서화가 걸린 식당에서 5천원짜리 점심을 사주었더니, 스무가지가 넘는 반찬에 밥 두 그릇을 뚝딱 먹어치웠다.

저녁에는 일식집에서 매실주 한 병을 시키자 공짜 안주가 잇따라 나오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전라도의 푸짐한 먹거리 인심과 감칠 맛 나는 음식맛에 연신 감격해 하는 모습에 나는 왠지 즐겁고 흐뭇했다. 이럴 때 나는 이 땅에 태어난 것에 대해 간질간질한 행복을 느낀다.

전라도는 맛과 멋의 고장이다. 옛날에 전라도에서는 시집간 딸이 친정에 오면 먼저 "먹는 것은 제대로 해 먹고 살더냐" 고 물었다고 한다.

충청도 사람들이 예절을 중히 여기고 서울 사람들이 옷사치, 경상도 사람들이 집사치 하기를 좋아했다면 전라도에서는 입사치를 으뜸으로 쳤다. 그래서 전라도에 2년쯤 있다 가면 그림에 눈을 뜨고 입맛을 안다고 했다.

내가 사랑하는 전라도 음식은 전어창자로 만든 돔배젓, 머리털 같이 가늘고 긴 파래로 끓인 매생이국, 아주 작은 민물새우로 담은 토하젓, 모쟁이젓, 홍탁, 고들빼기 김치 등이다.

특히 메주를 빻아 고추가루와 함께 찰밥에 버무러 간장을 조금 친 다음에 두엄 속에 묻혀 발효시킨 집장의 맛은 새콤달콤한 맛이 별미다.

이런 음식 맛을 전라도 사투리로 '개미가 있다' 라고 한다. '담백하고 소박하며 깊은 맛이 있다' 라는 뜻이다. 이렇듯 전라도 음식은 결코 사치스럽거나 기름지지 않고 소박하다.

닷새동안 전라도 여행을 마친 후배가 서울에 도착해서 전화를 했다.

"보성에서 판소리를 들으며 전어회도 먹어봤고 무안에서 기절낙지도 맛봤구만이라. 징허게도 맛있습디다. 선배님이 고향을 뜨지 않은 이유를 인자 알 것 같습니다요. "

그새 전라도 사투리를 배운 후배는 자기도 전라도에 내려와 살고 싶다고 했다. 아직도 전라도를 비뚤어진 눈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쯤 전라도에 와서 이 '개미있는' 음식들을 먹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전라도 사람들의 참으로 넉넉하고 속 깊은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순태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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