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빚탈출 희망 보여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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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법원에서 개인회생제도 개시 결정을 받은 간호사 A씨(26).

남편과 아이(2)가 있는 그는 매달 186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지만 현재 약 3786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재산은 월세 보증금 500만원과 세간살이가 전부다. 그에게 처음 빚이 생긴 것은 대학생 때인 1999년.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동생과 함께 살아가느라 카드 한 장으로 생활비를 쓴 게 시작이었다.

다행히 2000년 3월 대학 졸업과 함께 대학병원에 간호사로 취직이 됐지만, 대학생인 남편을 만나 결혼 생활을 하면서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A씨 한 사람의 월급으로 남편의 학비와 생활비를 대다 보니 빚은 늘어만 갔다.

남편도 학업을 포기하고 식당에 취직했지만 월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가 많았다. 아이가 생기자 매달 45만원씩 보육비가 추가로 들어가 카드빚과 은행 대출금은 쌓여만 갔다. 지인에게서 1000만원을 빌려 시부모의 사업자금을 댔지만 시부모마저 사업실패로 빚더미에 앉았다.

결국 빚으로 빚을 막아 하루하루 살게 된 A씨 부부는 개인회생제도가 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제도 시행 첫날인 지난달 23일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지난 11일 A씨 등 다섯 명에게 '개시 결정'을 내렸다. 전국 14개 지방법원에는 모두 583건의 개인회생 신청이 접수됐으며 A씨 등 5명이 첫 수혜자가 됐다. 개시 결정이 내려지면 법원은 해당 채권자들에게 이를 통보하고, 채권자들의 이의 제기와 채권자 집회 등을 거쳐 최종 인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개시 결정과 동시에 금융기관 등은 채무자에게 빚을 갚으라는 독촉을 할 수 없게 된다.

A씨를 포함, 개시결정을 받은 다섯 명은 26~39세의 사회복지사.회사원 등 모두 급여소득자다. 여자가 네 명, 남자가 한 명이며 이들은 40~96개월간 매월 47만~113만원씩 원금의 79~100% 변제한다는 계획안을 냈다.

A씨는 자신의 변제 계획대로라면 매달 95만원씩 40개월간 총 3800만원을 갚으면 모든 빚이 해결된다. A씨 등에 대한 최종 변제계획 인가 여부는 이르면 올해 12월께 결정된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차한성 수석부장판사는 "개인회생제도는 A씨처럼 고정적인 수입을 가진 과다 채무자를 위한 것"이라면서 "수입이 일정치 않은 경우라면 개인파산제도 이용을 고려해 보라"고 말했다. 차 부장판사는 "서울에 접수된 사건 중 약 80%는 변호사 도움없이 본인이 직접 신청한 것"이라면서 "인터넷 등을 잘 이용하면 '나홀로 신청'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개인회생제도=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채무자가 매달 일정 금액을 일정 기간 성실히 갚을 경우 나머지 빚을 탕감해주는 제도. 자세한 이용절차는 대법원 홈페이지(www.scourt.go.kr)의 '알기 쉬운 소송' 코너에 나와 있다.

김현경.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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