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바이러스와 반세기 (3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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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33. 노벨상 미련

기왕 상(賞) 이야기를 꺼냈으니 노벨상얘기도 해야겠다.

최근 김대중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한국인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은 조금 빛바랜 느낌도 들지만 나만큼 언론을 통해 노벨상 유력인사로 소개된 이도 드물지 않았나 싶다.

내가 처음 노벨상이야기를 접한 것은 핀란드에 갔을 때였다. 핀란드대학에서 유행성 출혈열 발견과정에 대해 강의했는데 그곳 사람들이 내게 당신의 연구는 노벨상 감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이유인즉 수년전 핀란드를 찾은 미 국립보건원의 가이듀섹박사가 유행성 출혈열 바이러스를 찾아내는 것은 "impossible(불가능하다)" 이라고 단언했다는 것이다.

슬로우바이러스를 규명해 낸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가이듀섹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을 당신이 해냈으니 당신이야말로 노벨상을 받을만하다는 논리였다. 나는 78년 가이듀섹박사를 한국으로 초청해 나의 연구결과를 보여줬다.

당시로선 그가 한국을 찾은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였다. 기자들이 공항까지 몰려 나와 인터뷰를 하는 등 언론에 그의 방문은 대서특필됐다.

그는 일주일 간의 한국체류동안 나와 함께 내 연구를 일거수일투족 지켜봤다. 그가 돌아가는 날 기자회견에서 그는 나의 연구에 대해 "breakthrough(획기적 업적)" 라고 표현했다.

물론 서구인 특유의 치켜세우기도 있었겠지만 당시 내 연구가 세계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것만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 역시 노벨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노벨상 수상을 결정하는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의 노벨의학상 결정위원회 사무총장인 린드스텐박사를 만나 79년 한국으로 초청했다. 스웨덴에서 의사생활을 하던 한국교포 한영우씨의 주선으로 이뤄진 만남이었다.

린드스텐박사는 내게 여러가지 조언을 했다. 결론인즉 실험실에 파묻혀 지내는 학문연구뿐 아니라 국제학계에 자신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노벨의학상은 전세계 권위자들에게 매년 2백명을 추천받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모든 과정은 철저하게 비밀이 유지된다.

특히 최종선발과정에서 있었던 위원회의 토론내용은 50년후에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라 한다. 따라서 지금 인구에 회자되는 노벨상 뒷이야기는 전부 50년전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다. 알고봤더니 이미 한국에도 추천해달라는 통지가 왔다는 것이 아닌가.

서울대의대 학장이었던 고 서병설박사가 내게 털어놨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땐 내 업적이 발표되기 전이라 한국엔 추천할만한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이후 한국에 추천을 의뢰하는 통지는 오지 않았다하니 나로선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에이즈 연구로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캐나다의 강칠용박사가 캐나다학술원장을 통해 나를 노벨의학상 수상자로 추천했다는 이야길 들은 적도 있다. 내가 모르는 다른 누군가가 나를 추천했을 수도 있다.

물론 노벨상이 로비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니만큼 비슷한 업적이라면 국력이나 인맥, 사회활동 등이 좌우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에서 유전학이나 뇌신경학으로 노벨수상자의 무대가 바뀌는 것도 내겐 불리한 추세다.

나는 이미 노벨상에 대해 미련을 버린지 오래다. 그러나 올해 내한한 노벨재단 사무총장 노르비박사는 나에게 당신은 바이러스 발견 외에 예방백신의 개발이란 플러스 알파도 있으니 한번 기대해봐도 좋지 않느냐는 이야길 농담처럼 한 적이 있다.

순간 사람 일은 모르는만큼 일단 오래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벨상은 아무리 탁월한 업적의 소유자라도 죽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호왕 <학술원 회장>

정리=홍혜걸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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