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맛골 선술집 ‘청일집’ 통째로 박물관 옮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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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떡과 막걸리로 1945년부터 반세기가 넘는 시대를 풍미한 피맛골 ‘청일집’이 5일 문을 닫는다.왼쪽은 재개발 공사 현장이고, 뒤로 보이는 건물이 식당이 새로 옮겨 갈 빌딩이다. 손님들이 이용하던 탁자와 막걸리잔, 주당들의 낙서가 가득 담긴 벽체, 주방의 조리도구 등은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청일집 안주인 임영심(61)씨가 65년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식당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박종근 기자]

‘찌그러진 막걸리 잔과 삐거덕거리는 계단, 벽면에 빼곡한 낙서 …’.

서울 종로 피맛골의 마지막 선술집인 청일집 풍경들이 고스란히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옮겨진다. 서울시는 피맛골에서 65년간 빈대떡 막걸리집으로 자리를 지키다 5일 문을 닫는 청일집을 서울역사박물관으로 옮기로 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문을 연 청일집은 장안 술꾼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1, 2층을 합쳐 30평 남짓한 가게 안에는 손때 묻은 20여 개의 낡은 테이블, 누군가 장단을 맞췄을 휜 젓가락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청일집 주인 박정명(69)씨는 “피맛골 재개발로 더 영업하는 것이 불가능해 근처의 빌딩에 가게를 얻어 이사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종로구 청진동에서 태어나 자란 피맛골 토박이다. 박씨는 “결혼 직후 부친에게서 가게를 물려받아 40년간 운영했다”며 “손님들과 애환을 나눴던 가게 문을 닫자니 서운하다”고 말했다.

청일집은 70년대만 하더라도 장안에 빈대떡 맛이 좋기로 소문나 청와대에서 녹두가루 반죽을 사가기도 했다. 고관대작을 비롯해 시인·배우 등 장안의 명사들이 단골로 드나들었다.

박씨는 “쌀막걸리 제조가 허용된 70년대 후반이 최고 전성기”라고 기억했다. 자정 무렵이면 당시 최고의 번화가였던 명동과 무교로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한 주당들이 피맛골로 몰렸다고 한다. 가게 안 금고엔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직장인들이 술값으로 풀어놓고 간 시계가 수북이 쌓여 있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박씨는 “취객들이 시계를 풀 때는 술값을 흥정하기도 했다”며 “한데 카드가 나와 술값을 긋기 시작하면서는 정이란 게 없어졌다”고 말했다.

2001년엔 고 손기정 선생과 황영조 선수가 이 집에서 만나 막걸리 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최근 들어 손님들의 요구에 따라 족발과 파전도 안주로 내놓았지만 본메뉴는 빈대떡과 막걸리였다. 특히 녹두를 갈아 대파와 배추 등을 다져 넣고 돼지기름을 바른 불판에 구워 내놓는 1만원짜리 빈대떡이 인기를 끌었다.

서울역사박물관 정명아 유물관리장은 “청일집의 손님들이 이용하던 탁자와 막걸리 잔, 메뉴판, 주방의 조리 도구를 모두 수집할 것”이라며 “장안 주당들의 낙서가 담긴 벽체도 그대로 뜯어내 박물관으로 옮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청일집 유물은 7월 역사박물관에서 열릴 ‘우리들의 종로전’에서 근처에 있던 한일관이나 청진옥·열차집 등에서 수집한 물건들과 같이 전시된다. 역사박물관은 피맛골의 풍경을 남기기 위해 재개발이 본격화한 지난해 8월부터 선술집 풍경과 음식·집기 등을 수집하고 3차원 실사로 촬영하는 작업을 해왔다.

글=장정훈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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