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맹점도 해결책 못 된 ‘SSM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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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기업형 수퍼마켓(SSM)을 둘러싼 갈등이 여전하다. 대형 유통업체가 지역 상인의 반발을 의식해 일반 상인에게 SSM 점포를 분양하는 ‘프랜차이즈 SSM’ 아이디어를 냈지만 갈등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달 27일 인천시 갈산동 주택가. 40여 명의 주민이 흥분한 모습으로 홈플러스의 SSM 입점을 막는 시위용 천막을 걷어내고 있었다. 욕설도 오갔다. 흥분한 주민들이 몰려가 천막 한 동을 철거하자 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시민단체 회원이 급히 몸을 피했다.

SSM을 둘러싼 이 지역의 갈등은 지난해 8월로 거슬러간다. 홈플러스는 이곳에 SSM을 열려다 시민단체와 인근 중소상인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들의 사업조정신청에 따라 영업정지권고를 받고 문을 열지 못한 것이 이달로 7개월째. 그러자 지역 주민들이 나섰다. 주민들은 중소기업청과 인천시에 사업조정신청을 철회해 달라는 민원을 했다. 재래시장도 멀고 주민 중 노인과 어린이가 많아 SSM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말 이 점포를 가맹점(프랜차이즈)으로 전환해 올 초 개점하려 했으나 시민단체가 또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자 주민들이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인천시 갈산동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SSM을 둘러싼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12월 초 홈플러스와 GS수퍼마켓은 대기업이 주도하는 SSM의 대안으로 프랜차이즈화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지역 소상인이나 시민단체 등은 프랜차이즈화가 대기업의 우회 확장 전략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했다. 그러나 지역주민 중에는 SSM의 입점을 반기는 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는 사이 SSM과 일반 소비자, 소상인 간의 골은 더 깊어졌다. 현재 48곳의 SSM이 영업정지 중인 홈플러스는 관리비 등 누적 손실만 250억~300억원(추정치)에 달한다. 이 때문에 더 이상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입장이다. 홈플러스는 현재 10여 곳에서 프랜차이즈 매장 개점을 준비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늦어도 설날 전까지는 첫 프랜차이즈 매장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GS수퍼도 3월 이후 프랜차이즈 점주를 모집한다는 목표 아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현재는 일부 직영점에서 가맹사업의 수익성 등을 테스트 중이다. 롯데슈퍼도 가맹점 사업에 진출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공정거래위에 제출할 정보공개서를 준비 중이다. 대형 마트 업계 1위인 이마트도 SSM 확장에 소극적인 입장을 바꿔 SSM 숫자를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정부 입장은 어정쩡하다. 최근 중소기업청 홍석우 청장은 “법 규정만 놓고 보면 가맹점은 사업조정신청 대상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정상적인 가맹점으로 생각할 수 없는 점포의 편법 확장을 규제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김난도(소비자학) 교수는 “업체나 시민단체·소상공인 모두 SSM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없이 자기한테 유리한 쪽으로만 상황을 이끌고 가려 한다”며 “무엇보다 소비자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사태가 해결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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