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최악의 루저는 시스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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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나.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기 어렵듯, 성공한 기업도 전성기를 오래 유지하긴 어려운 모양이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 최신호는 3일(현지시간) 지난 10년 동안 가장 극적인 추락을 겪은 ‘최악의 미국 기업’ 10곳을 선정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정보기술(IT) 분야의 회사였다. IT 붐을 타고 급성장하다 고꾸라진 사례가 많았다.

가장 큰 낙폭을 보인 곳은 네트워크 장비 업체인 시스코 시스템스다. 시스코는 2000년 3월 5570억 달러에 달하던 시가총액이 최근 1320억 달러로 추락했다. 4250억 달러가 증발한 것이다. 시스코는 마이크로소프트(MS)·인텔과 함께 IT 시장을 이끌면서 나스닥에 상장한 지 8년 만인 1998년, 시가총액 1000억 달러를 달성했다. 그러다 2000년부터 IT 버블이 꺼지면서 1년 동안 주가가 77%나 떨어졌다. 이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체질을 개선하고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고 있지만 옛 명성을 되찾진 못하고 있다.

두 번째 ‘루저’로는 제너럴일렉트릭(GE)이 꼽혔다. 미국 대표 기업인 GE는 지난 10년 동안 시가총액이 3분의 1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2000년 8월 6010억 달러에 달했던 시가총액은 최근 1780억 달러가 됐다. GE는 자회사인 GE캐피털을 키우면서 전체 수익의 60%를 의존했다. 하지만 리먼브러더스 파산에 이은 금융위기 여파로 GE캐피털이 흔들리면서 GE의 주가는 급락했다.

3위에는 반도체 회사인 인텔이, 4위에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인 MS가 선정됐다. 인텔의 시가총액은 2000년 8월 5090억 달러였지만 10년 동안 1090억 달러로 몸집이 줄었다. PC 프로세서 칩 부문의 제왕으로 군림했지만 휴대전화와 스마트폰 등 신제품 시장에서 밀려 하향세로 접어들었다.

MS 역시 닷컴 버블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0년 6420억 달러의 시가총액을 기록했지만 10년 동안 절반 이상을 까먹었다. MS 또한 변화에 둔감한 것이 정체의 원인으로 꼽힌다. 넷북 등 새로운 디바이스의 출현으로 시장에선 윈도와 오피스 프로그램이 무료로 유통되는데도 불구하고 MS는 기존 판매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나마 이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문을 닫거나 인수합병 후유증에 시달린 기업도 있다. 5위에 꼽힌 통신장비업체 노텔은 지난해 아예 문을 닫았다. 2000년 6월 기업 가치가 2800억 달러로 평가됐지만 10년도 안 돼 파산의 운명을 맞은 것이다.

1999년 2850억 달러의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받던 루슨트 테크놀로지는 2006년 프랑스 통신회사인 알카텔에 인수됐다. 온라인 통신회사 아메리카 온라인은 2000년 1월 미디어 공룡 타임워너를 인수했다가 지난해 12월 결별했다. 1999년 2220억 달러에 달했던 시가총액은 분리 후 30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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