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쳐두고 중국에 치중하는 건 성급한 행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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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한.미동맹 관계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강대국의 흥망' 저자인 폴 케네디(59) 예일대 교수는 12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2050년에도 미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여전히 중국의 3~4배 이상 될 것"이라며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무엇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중 관계에만 치중한다면 성급한 행동일 것"이라고 말했다.

케네디 교수는 매일경제신문 주최로 열린 제5회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는 이 포럼 개막총회에서 "21세기 세계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에는 국제 안보가 최대 관건이 될 것"이라며 "국가 지도자와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안보 요인을 고려해 국가와 기업 운영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간담회 요지.

-최근 골드먼 삭스가 중국 경제가 2050년에 미국 경제를 앞지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제학자들은 중국의 연평균 경제 성장률이 6~8%에 이르고, 미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3% 정도 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중국이 조만간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말한다. 골드먼 삭스의 전망에는 두 가지 고려 사항이 빠져 있다. 첫째는 중국 내부에서 동요가 일어날 가능성과 인도.대만.러시아 등 국경을 맞댄 나라들과의 분쟁 가능성 등 정치적 요인이다. 둘째로는 국민 1인당 GDP를 고려하지 않았다. 2050년에 중국은 인구가 14억명, 미국은 3억3000만명 정도 될 것으로 볼 때 미국인 한 명당 소득은 여전히 평균적으로 중국인보다 서너 배 많을 것이다."

-한국에선 한.미동맹보다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에서 공개적으로 이런 논의가 진행된다면 이는 섣부른 생각이다.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어떤 호의를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논의는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뿐이다. 중국 역시 중.미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주장은 어리석은 느낌마저 든다."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은 국방비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계속 국방비에 투자를 많이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내가 쓴 '강대국의 흥망'은 한 국가의 경제적 흥망이 군사적 흥망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 경제력과 군사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의 무역 적자와 정부 재정 적자가 늘어나고 있는 점을 고려했을 때 경제력이 힘을 잃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과거에 스페인의 필립2세가 국방비에 과다한 투자를 했기 때문에 결국 나라가 기울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 미국의 국방비 지출규모는 연간 4500억달러로 미국 다음으로 국방비를 많이 지출하는 나라 15개국의 국방 예산을 더한 수준이다. 만일 달러 약세가 지속되고 미국 국채에 대한 투자가 늘지 않는다면 미국은 국방비 지출을 줄여야 한다."

-존 케리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의 대북 정책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케리 후보는 클린턴 정부의 정책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 지역회의를 포함한 다자간 접근 방식을 모색하고, 외교를 통한 관계개선을 추구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북한이 미사일 실험이나 핵탄두 실험을 계속 벌인다면 케리 정부도 강경히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일부 한국인들 사이에 반미감정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이 한반도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젊은 층의 반미 감정은 한국뿐 아니라 유럽.중동.남미 등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은 독일 통일에 반대하지 않은 것처럼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한반도 통일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단지 현재 국무부나 국방부가 우려하는 것은 ▶한반도 통일이 어떤 형식으로 될 것인가▶어떤 정책을 펼 것인가▶한반도 통일 후 한.중 관계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등에 대한 것이다. 또 미국 정부는 통일 뒤 한국이 대테러전에서 중립을 지킬 것인지, 미국을 배제한 채 동북아시아에서 무역 및 정치적 지역 블록화를 추진하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박성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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