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 3년…㈜한국은 달라졌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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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부는 최근 겪고 있는 금융.외환시장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꼭 3년 전인 1997년 11월 21일 오후, 당시 임창열(林昌烈)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은 다소 잠긴 목소리로 발표문을 읽어 나갔다. 한국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음을 세계에 알리는 내용이었다.

3년이 흐른 지금, 상황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그간 정권이 바뀌고, 남북한 관계에 지각변동이 있었다.

그러나 11월 21일 현재의 상황은 3년 전을 방불케 한다. 97년과 비교하면 "보유 달러가 바닥나 하루 하루 외환 부도 위기를 넘기던 상황만 다를 뿐 정치.사회적인 상황까지 종합하면 매우 흡사하다" (안국신 중앙대 교수)는 견해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

정권교체를 앞둔 98년 1월 말 재경원이 작성, 발표했던 '97년 경제위기의 원인.대응.결과' 라는 보고서는 위기의 직접적 원인을 ▶한국 기업의 부실 구조대책 미흡▶부실 금융기관의 구조조정 미흡▶대규모 부실채권 정리계획 지연▶강력하고 효율적인 금융감독체계 미비▶기업 및 금융기관의 투명성 부족▶경제위기를 해결할 총체적 리더십 부재 등 여섯가지로 제시했다. 대상이나 정도에 다소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런 요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

20일 발표된 현대그룹의 다섯째 자구책이 보여주듯 기업 부실 문제는 여전하며,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은 공적자금 투입 지연과 노조의 저항에 밀려 표류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신뢰도는 흔들리고 있으며, 회계자료나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 시비도 여전하다.

특히 국가적 리더십의 실종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3년 전에도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당시 정부가 '위기 타개의 근본처방' 이라고 주장하며 제출한 금융개혁 관련 13개 법안의 처리를 지연시켰다. 대통령도, 장관도 제 구실을 못하는 사이에 대외신인도는 추락하고 위기가 몰려왔다. 공적자금 추가 조성을 볼모로 극한 대결로 치닫고 있는 지금의 정국 상황과 큰 차이가 없다.

전주성(이화여대.경제학)교수는 "리더십을 회복해 힘을 결집하는 데서 재출발해야 한다" 며 "국정 최고 책임자는 야당과 노조 등을 설득할 수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고 밝혔다.

이만우(고려대.경제학)교수는 "외환보유액이 크게 늘어 3년 전과 똑같은 위기를 겪지는 않을 것" 이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구조조정을 계획대로 추진해 대외신인도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 이라고 강조했다.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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