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도서 '맞교환' 문제 첫 공개토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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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문화재 등가교환은 일본을 비롯해 우리 문화재를 갖고 있는 여러 나라들과의 협상에서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이뤄져서는 안된다" "프랑스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을 찾지 못했다는 우리 협상자들의 태도는 여전히 프랑스를 우리보다 우월한 국가로 보고 있다는 증거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20일 대한상공회의소에 국제회의실에서 개최한 '외규장각 도서문제 공개토론회' 에서 참석자들은 앞다퉈 그간 이뤄진 한불 협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오후 1시30분부터 4시간을 잡아놨으나 오후 7시에야 끝났다. 주최측도 개선방안을 제시하지 못했고 반론을 제기하는 쪽도 현실적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지난달 한국과 프랑스 정상회담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맞교환' 하는 장기임대방식이 채택된지 정확히 한달. 그간 그 어떤 사안보다도 찬반양론이 비등했지만 이날 첫 공개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은 기존 주자을 되풍이 하는데 그쳤다.

한상진 정신문화연구원(이하 정문연)원장과 정옥자 서울대 규장각 관장,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이희재 숙명여대 도서관장, 김덕주 외교안보연구원 국제법 교수 등 토론 참석자들의 얘기는 평행선을 달렸다.

먼저 외규장각 협상보고에 나선 한상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하 정문연)원장은 "문화재의 무조건 반환을 요구하는 국민기대와 협상사이에 오해가 있었다" 고 설명했다.

당초 1993년 정상회담때부터 외규장각 협상이 '교류' 와 '대여' 로 진행됐으며, 무조건적인 반환이 거론된 적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협상의 진척이 더딘 또다른 이유는 우리 국민의 관심이 높은데 반해 프랑스에서는 실무를 맡고 있는 오직 소수의 사서만이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원장은 설명했다.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한.불 공동연구에도 소극적이어서, 지난달 말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열린 '병인양요의 재조명과 외규장각 도서문제' 의 학술토론회에는 우리측 학자들만이 참석했다.

하지만 우리측 협상대표를 맡은 한원장이 지난 2년7개월간 단 한차례의 여론수렴은 물론, 학계의 공개토론회 조차 열지 않은데 대한 비난은 면하기 어렵다.

그간 역사학회와 법학회 등 11개 학계를 대표해 정부의 외규장각 등가교환 방침에 반대해온 이태진.백충현 교수(서울대)는 아예 "한차례 공개토론회라는 형식을 이용해 충분한 여론수렴을 했다는 면죄부를 제공할 수 있다" 며 토론회에 불참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정옥자 서울대 규장각관장은 "문화재 등가교환은 프랑스에 실리와 명분을 모두 주는 것" 이라며 "지난 10년간 꾸준히 이 문제를 연구해온 학자들과 관리들이 포함된 의궤연구팀을 가동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고 기존입장을 되풀이했다.

실망스러운 패널들의 토론과는 달리 방청석에서는 활발한 의견이 제시됐다. 정문연의 이성미 교수(미술사)는 "프랑스가 그간 외규장각 의궤로 어떤 연구를 해왔는지,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프랑스측에 묻고 싶다" 면서 "반환에 앞서 우리가 주체의식을 갖고 의궤에 관한 정보를 프랑스측에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고 말했다.

한국 유네스코의 허권 문화부장은 "지난 수년간 협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원론적인 상태에 머물고 있다면 협상당사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

국제법 학자들을 포함한 관계자들과 국제 NGO와의 공동보조를 모색하는 등 협상의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박소영 기자

사진=김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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