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보다 길던 하룻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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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국회에서 박순용(朴舜用) 검찰총장과 신승남(愼承男) 대검차장에 대한 탄핵안이 본회의 자동유회(流會)로 무산된 17일.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에 남아있던 검찰 간부들은 밤늦게까지 국회 상황을 점검하느라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이들의 표정에는 시종일관 긴장과 초조가 감돌았다.

자정 무렵 유회 소식이 전해지자 검찰 간부들은 '일단 안도' 하는 모습이었다.

한 검찰 간부는 "탄핵안 가결(可決)로 검찰 수뇌부의 업무가 정지되는 최악의 상황은 일단 오지 않았다" 며 "국가의 장래를 위해 천만 다행" 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부담을 걱정하는 간부들이 적지 않았다.

오후 11시 넘어까지 TV 등을 통해 국회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간부는 "야당이 계속 이번 사건을 물고 늘어지면 검찰 수뇌부의 입지가 어려워질 것" 이라고 걱정했다.

한편 朴총장과 愼차장은 이날 저녁 평소와 같이 퇴청, 자택에서 시시각각으로 전해오는 여야 대치 상황을 보고받았다.

朴총장은 이날 오?7시쯤 검찰청사를 나서면서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받자 "모델료를 받아야겠군…" 이라며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그는 최근 부친과의 전화통화에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마음 고생이 심했던지 가벼운 몸살 기운마저 있는 것 같았다" 고 전했다.

朴총장보다 조금 앞서 퇴근한 愼차장은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 고 짤막하게 말한 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전날에 이어 이날도 기자 간담회를 취소했다.

이에 앞서 두 사람은 사무실에서 사적(私的)전화 통화는 일절 하지 않고 간부들의 보고도 가급적 짧게 받는 등 긴장된 하루를 보냈다.

대검 이범관(李範觀)공안부장과 유창종(柳昌宗)강력부장은 직접 국회로 나가 의원들을 상대로 탄핵안의 부당성을 설명, 검찰의 다급한 심정을 보여줬다.

전국 검찰의 일선 검사들도 일손을 놓은 채 탄핵안 처리 과정에 관심을 기울였다.

지방의 한 검사는 "이번 일을 계기로 검찰 내부에 대한 개혁은 물론 대국민 신뢰회복을 위한 획기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 면서 "통치권 차원의 인사 조치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는 자성론을 폈다.

한 부장 검사는 "어쩌다 검찰이 이 지경까지 됐는지 모르겠다" 고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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