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뇌부 탄핵안 처리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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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야는 17일 국회에서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과 신승남(愼承男)대검차장의 탄핵소추안 처리를 둘러싸고 긴박한 하루를 보냈다.

'소수 여당' 인 민주당은 표결에 자신이 없는 듯 탄핵안의 본회의 상정을 무산시키기 위해 시간끌기 전술로 나왔다.

박병석(朴炳錫)대변인은 "특별한 작전은 없지만 '결(決.표결)' 은 없을 것" 이라며 표결 불참을 예고했다.

탄핵안은 본회의 보고 후 72시간(18일 밤) 동안 처리하지 않으면 자동 폐기된다(국회법). 18일에는 국회가 열리지 않아 17일 밤만 버티면 된다는 게 민주당의 판단이다.

때문에 민주당은 이날 진행한 사회분야 대정부 질문(여야 의원 11명질문.의원당 15분씩)을 최대한 끌어 안건이 탄핵안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다했다.

민주당 의원 6명은 모두 10분씩의 보충질문까지 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소속 의원들의 질문에 대한 장관들의 일부 답변을 서면으로 받는 등 시간 단축에 애썼다.

이런 장면을 놓고 "여야가 바뀌었다" "여당이 필리버스터(Filibuster:고의적인 의사진행 방해) 유형의 지연전술을 쓰는 것은 전례가 드물다" 는 국회 직원들의 평가가 나왔다.

◇민주당의 '소걸음' 작전〓시간을 끌기 위해 민주당은 자체 의원총회를 여러차례 소집했다.

각 당의 의원총회 때는 본회의가 잠시 중단되는 게 국회 관례다.

때문에 대정부질문(오전 10시 예정)은 11시50분 시작됐다. 그리고 점심.저녁 식사 뒤 본회의 속개 때에도 의원총회를 먼저 소집해 시간을 끌었다.

비공개 의총에서 천정배(千正培)수석부총무.함승희(咸承熙)의원 등 법조 출신들이 나와 "탄핵안이 구성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도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표결을 예로 들면서 "미국은 우리 야당처럼 정치공세로 탄핵안을 내지 않는다" 며 "검사는 탄핵소추 대상이 되지 않는데 과거 여당이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야당의 요구를 수용해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 고 주장했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자신들의 전략이 옹색함을 인정하면서도 "한나라당이 朴총장은 살려주고, 호남 출신인 愼차장의 탄핵안만 가결시킨다는 얘기가 있어 표결 전략을 포기했다" 고 말했다.

◇조바심 낸 한나라당〓한나라당 김무성(金武星)수석부총무는 오후 의총을 끝내고 걸어 나오는 민주당 정균환(鄭均桓)총무.천정배 수석부총무에게 고함을 질렀다.

"대정부질문 안할거냐. 제발 본회의장에 들어와라. " (金武星)

"염려말고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 " (千正培)

한나라당 정창화(鄭昌和)총무는 민주당 박병석 대변인을 본회의장에 끌고 들어가면서 "여당 의원 한사람 모시기가 이렇게 어렵다" 고 말했다.

오후의 대정부질문은 한나라당 총무단이 이만섭 의장을 찾아가 사회를 봐줄 것을 강력 요구해 예정보다 1시간 30분 늦은 오후 4시 속개됐다.

오전 의총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민주당이 자극적인 발언으로 우리 당의 감정적 대응을 유도할 지 모르지만 탄핵안 표결 관철을 위해 꾹 참자" 고 다짐했다.

정창화 총무는 "민주당의 방해로 탄핵안 상정이 무산될 경우 새해 예산안과 공적자금 심의절차를 거부하겠다" 며 "검찰 수뇌부 탄핵안도 회기 중 다시 낼 것" 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이상일.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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