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콜은 나쁘다? 전략적인 ‘매맞기’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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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도요타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RAV-4 수십 대가 1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의 한 매장 앞에 주차돼 있다. 도요타는 가속페달결함에 의한 안전상의 이유로 미국에서 RAV-4를 비롯한 8개 차종에 대한 판매를 잠정 중단했다. [피닉스 로이터=연합뉴스]

미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최근 역대 최대·최악의 리콜 제품 10선을 발표하면서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리콜을 1위로 꼽았다. 도요타가 차량 매트와 가속페달 결함으로 1000만 대에 이르는 대량 리콜을 하면서 리콜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아지고 있다. 리콜은 생산자가 제품의 결함을 발견해 수리해 주는 제도다. 결함보상제 또는 소환수리제라고 한다. 고장 가능성이 있는 물건을 미리 고쳐준다는 면에서 피해 확산을 예방하는 소비자 보호 제도다. 따라서 리콜이 회사에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도 있다. 산업연구원 이항구 기계산업팀장은 “서비스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자발적 리콜을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기도 한다”며 “문제는 리콜을 해야 함에도 은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발적 리콜이 대부분=1만 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자동차에 대해 업체가 리콜을 실시하는 일은 통상적인 일이지만 이번 도요타 사태처럼 공장 생산까지 중단하는 일은 드물다. 더군다나 ‘도요타 생산방식(Toyota Production System)’이 학문적 연구 대상이 될 만큼 품질관리의 표본이 됐던 도요타에서 생긴 일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이 주는 충격은 크다.

이번 도요타 리콜에 따르는 비용은 직접적 수리비용과 공장 폐쇄비용을 합해 총 6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통상적으로 기업의 리콜 비용은 보증수리에 따르는 충당금으로 조달돼 연말 결산에서 영업손실로 잡힌다. 경우에 따라서는 보험을 통해 충당하는 경우도 있다.

리콜제도는 제작자의 자발적인 리콜과 정부에 의한 강제적인 리콜로 나뉜다. 정부에 의한 강제 리콜보다는 자발적 리콜이 대부분이다. 리콜이 활발한 미국에선 95%가량이 자발적 리콜이다. 국내에서도 80% 정도가 자발적 리콜이다. 미국·유럽에서는 PL법(제조물책임법)이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1960년대 말에 도입됐으나, 국내에서는 1992년 법제화됐다.

◆1200만 대 리콜도=2000년 8월 파이어스톤 타이어 650만 개 리콜은 자동차 업계 최악의 리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포드의 SUV인 익스플로러 등에 장착된 이 타이어는 운행 중 펑크가 나는 문제가 생겼다. 타이어 사고로 170여 명이 숨지고 700명 이상이 다쳤으며 결국 사상 최대의 타이어 리콜로 이어졌다. 타임이 최악의 리콜 4위로 꼽은 포드의 핀토는 연료통 위치가 잘못돼 후방 충돌 시 폭발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로 1978년 150만 대가 리콜됐다. 포드는 2008년 2월 크루즈 컨트롤(자동운전제어장치) 스위치의 결함으로 1200만 대의 차량을 리콜하기도 했다.

일본 미쓰비시는 리콜 요구 은폐로 큰 곤욕을 치렀다. 미쓰비시는 차의 결함을 20여 년간 숨겨오다 2000년 8월 80여 만 대의 차량을 리콜했다. 당시 미쓰비시는 은폐 사실을 공식 인정하고 관련 임원을 징계했다. 리콜 사태로 미쓰비시는 신뢰에 큰 타격을 입었고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봤다.

◆국내 리콜=국내에서 단일 건으로 가장 규모가 컸던 리콜은 2002년 현대차 뉴포터 1t 화물차 49만7765대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브레이크 파이프가 변속기 케이블과의 접촉 과정에서 파손돼 브레이크 기능에 이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2005년에는 기아차가 카니발 30만8106대에 대해 조향장치의 고압호스가 열로 녹아 오일이 샌다는 이유로 리콜을 했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09년 리콜 대상이 된 차량은 총 72종 15만8824대(국산 25종 14만6148대, 수입 47종 1만2676대)다. 전년(10만5986대)보다 5만여 대 늘었다. 2004년 136만여 대를 기록했던 연간 리콜 차량 규모는 2007년 5만 대 수준까지 줄었다가 최근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르노삼성은 차량 핸들 이상이 발견돼 QM5 2만324대에 대해 리콜을 실시했다. GM대우도 안전벨트 결함 때문에 라세티 프리미어 3만2272대를 리콜했다.

수출이 늘면서 해외시장에서의 리콜도 생기고 있다. 지난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10여 개 모델에 대해 각각 96만 대와 14만 대를 리콜했다. 후미 정지등 결함과 차량 밑부분의 과도한 부식 등이 이유였다. 자동차소비자연맹 이정구 회장은 “리콜이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지만 차량 결함이 발견될 경우 소비자 보호를 위해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리콜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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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태정ㆍ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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