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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권력과 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역저(力著), '권력이동' 에서 권력의 원천으로 폭력.돈.지식 세가지를 들었다.

가장 질 낮은 권력이 폭력에 기초한 권력이고 고품질 권력은 지식에서 나온다고 토플러는 말한다.

지식은 단순한 영향력 행사에 그치지 않고 벌을 줄 수 있고 보상과 설득, 심지어 변형이 가능하며 적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 물리력과 돈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정보사회를 선도하는 미국의 자부심이 깔려 있다.

예부터 동양에서 권력은 천명(天命)이었다. 서양 절대왕정에서는 신(神)이 부여한 권한이었고,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게는 사회계약이 권력의 원천이었다.

20세기 들어서도 폭력은 권력의 유력한 출처였다. 중국 공산혁명을 완성한 마오쩌둥(毛澤東)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고 단언했다. 폭력혁명의 대선배격인 레닌이 원래 했던 말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총구에서 나온 권력' 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투표함에서 권력이 나온다는 걸 우리가 확인하게 된지는 10년도 채 안됐다. 하지만 선거가 수천억원을 쏟아붓는 금권선거로 타락하면서 권력은 돈에서 나온다는 것도 알게 됐다.

토플러가 말한 권력의 또다른 원천이다.

사상 최악의 돈선거였다는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가 변호사들의 대리전으로 비화하면서 결국 돈이 결과를 좌우하는 상황이 됐다.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와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 진영 중 어느 쪽이 충분한 소송비용을 마련해 유능한 변호사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판이다.

서로 '소송 드림팀' 을 짜기 위해 혈안이라고 한다.

부시 진영의 경우 3백만달러를 목표로 1인당 5천달러 이내에서 소송자금을 모금 중인데 이미 2백40만달러를 모았다는 소식이다. 요컨대 돈이 곧 승리다.

토플러에 따르면 권력 그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그동안 남용돼온 탓에 '악취' 가 붙어다닐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악취의 원인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대통령과 연방 상.하원의원까지 함께 뽑은 이번 미 선거에는 역대 최대규모인 30억달러의 천문학적 정치자금이 들어가 1996년에 비해 50%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의 권력도 아직은 돈에서 나오고, 플로리다 팜비치에서 나는 불온한 냄새도 다름 아닌 '돈냄새' 인지 모르겠다.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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