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사막 남극을 찾아서](18) 세종기지 인터넷 '거북'에서 ‘토끼’로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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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기지의 속 터지던 느림보 거북이 인터넷이 날렵한 산토끼처럼 빨라졌다. 세종기지의 인터넷 속도가 최근 256kbps에서 1Mbps로 향상된 것. 특히 전용회선이어서 인터넷 속도가 이전과 확연히 차이난다.

세종기지에 들어온 이후 필자를 유일하게 짜증나게 했던 것이 인터넷 속도였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인터넷 강국 한국에서 100Mbps급 인터넷을 사용하다 256kbps급을 사용하려니 속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이 증설되기 전 남극 세종기지는 칠레 텔멕스사와 계약을 체결, 총 384kbps의 대역폭만을 사용했다. 이 대역폭은 항공우주연구원의 아리랑 위성 관제소 운용으로 128kbps, 인터넷을 비롯한 남극세종기지 통신용으로 256kbps(음성전화 VoIP방식 2회선 64kbps, 팩스 64kbps 포함)로 분할돼 사용됐다. 사실상 128kbps가 인터넷 전용으로 사용된 셈이다. 이 조차도 세종기지에 상주하는 월동대원들과 하계대원들이 유선과 무선을 통해 인터넷을 사용해 거북이 속도라는 비유마저 과분했다.

때문에 한국에서는 클릭하면 바로 열리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도 접속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인기 기사를 다운 받는 데에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설상가상으로 이용자가 많을 때에는 시시 때때로 인터넷 접속이 끊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메일로 대용량 파일을 주고받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사람은 환경의 동물’이라고 하더니 처음 느꼈던 갑갑증은 시간이 흐르면서 ‘남극이니깐 그러려니’하고 자위로 변해갔다.

또 필자가 세종기지에 들어오기 전 극지연구소와 KT가 계약을 체결, 속도를 1Mbps로 증설한다는 계획을 알고 있어 증설이 끝나면 좀 더 빨라지겠지 하는 기대로 갑갑증을 이겨냈다.
‘고진감래’라더니 필자가 세종기지에 들어온 지 보름 정도 지나자 인터넷 증설작업을 위해 KT 관련 직원 2명이 세종기지로 들어왔다. 이들은 세종기지 들어온 다음날부터 생활동 바로 옆에 인터넷 속도 증설에 쓰일 위성안테나를 설치했다. 터를 닦고 안테나를 설치하고 돔을 씌우는 일까지 대략 열흘 가량이 걸렸다.

하지만 복병이 있었다. 인터넷을 중계하는 미국 기업이 휴가철을 맞아 연결 작업이 지연된 것. 인터넷 회선은 세종기지에서 위성을 이용해 미국 기지국까지 연결한 뒤 다시 한국까지 광케이블로 연결된다.

결국 20일 경에야 인터넷 증설작업이 완료됐다. 당초 예정일보다 열흘 가량이 더 걸린 셈이다. 또 인터넷이 기지까지 연결된 뒤 통신담당 대원과 KT 직원이 최종 테스트를 하는데 2~3일이 더 소요됐다.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자 대원들은 신이 났다. 대원들 사이에도 인터넷을 통해 얻은 아이티 강진, 1박2일의 세종기지 방문 등의 정보가 대화의 주제로 떠올랐다. 특히 인터넷이 빨라지자 가족들과 인터넷 화상채팅을 즐기는 대원들도 많아졌다. 아이를 두고 온 대원들은 목소리로만 듣던 아이의 모습을 보고 즐거워했다. 모니터를 통해 보이는 아이들도 웃음이 넘쳐났다.

하지만 대장과 총무, 그리고 연구반과 유지반을 책임지는 반장들은 약간 걱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대원들이 인터넷에 푹 빠져 숙소에서 두문불출 하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세종기지처럼 세상과 격리된 곳에서는 대원들과의 유대관계가 무척이나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대원들끼리 항상 부대끼며 정을 나눠야만 한다.

박지환 자유기고가 jihwan_p@yahoo.co.kr

*박지환씨는 헤럴드경제, 이데일리 등에서 기자를 했었으며, 인터넷 과학신문 사이언스타임즈에 ‘박지환 기자의 과학 뉴스 따라잡기’를 연재했었다. 지난 2007년에는 북극을 다녀와 '북극곰도 모르는 북극 이야기'를 출간했다. 조인스닷컴은 2010년 2월까지 박씨의 남극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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