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검찰권독립 미룰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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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검찰 개혁이 현 정권 최대의 과제로 떠올랐다. 검찰권 독립이나 정치적 중립 확보가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최근 검찰에 대한 불신은 더 이상 두고볼 수 없을 정도로 팽배해 있다.

중추적인 국가 사정기관으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잃은 지 오래다. 야당의 검찰 수뇌부 탄핵안 발의와 검찰청법 개정 추진과 맞물려 검찰이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를 검찰이나 집권층이 외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검찰 위상이 이 지경에 이른 데는 무엇보다 당사자인 검사 개개인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고위 간부일수록 정치 권력에 편승해 공권력을 휘두르며 본연의 업무보다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명예와 이익 보호에 집착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아울러 인사를 앞두고 지연.혈연.학연을 연결 고리로 정치권 줄대기에 동분서주했다면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행여 정치권력의 도움을 받으려 한 적이 있다면 이는 곧 '정치검사' 를 자임한 셈이다.

비록 일부라 하더라도 이들이 바로 상사요, 동료이고, 부하라면 조직 구성원인 검사들의 공동 책임이다. 정치검사가 외쳐대는 정치적 중립이나 검찰권 독립 주장이 무슨 설득력을 지닐 것인가.

그러므로 검찰 개혁은 내부의 뼈아픈 자정.자성 노력이 시발점이 돼야 한다. 귀한 권리일수록 쟁취하기 힘들고 희생과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검찰권 독립에도 상당한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소장 검사들을 중심으로 자성의 물결이 일고 있음을 주목한다. 지난해 대전 법조비리 사건 당시 항명.연판장 파문을 계기로 조성됐던 개혁 분위기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음을 뼈아픈 반성의 자료로 삼아야 한다.

검찰권을 사권력처럼 운용해온 역대 정권의 폐습이 고쳐지지 않는 한 검찰 독립은 이룰 수 없다. 집권이 곧 검찰권 장악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깨야 한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집권당 간부들이 앞장서야 한다.

그러나 검찰의 선거사범 처리와 관련한 윤철상 의원 발언이나 민주당 서영훈 대표가 국회 연설에서 대대적인 사정(司正)방침을 밝힌 것 등은 아직도 이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뜻하는 가까운 예다.

지금 검찰의 위기는 자칫 정권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검찰권 무력화가 길게 보면 결코 자신들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지 답답하다.

검찰권 중립을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도 필수적이다. 검사 동일체의 원칙이나 상명하복 조항이 악용될 소지를 없애야 한다. 인사의 투명.공정성을 위한 검찰 인사위원회 설치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등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검찰과 재야 법조인,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검찰 바로세우기' 개혁 기구를 구성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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