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의 세상 바꿔보기] 의리가 나라 망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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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가을이어서일까. 낙엽처럼 허무하게 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장사를 하다 보면 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영이 정도(正道)를 걷지 못해 망했다면 문제다. 회사는 무너져 가는데 경영진.노조 모두가 제몫 챙기기에 바쁘고 은행.관료.정치권 그리고 감독기관까지 온통 부정의 사슬로 엮어져 검찰청사로 줄줄이 묶여 들어간다.

마치 부패협동조합 같다. 그걸 또 지켜봐야 하는 국민의 심정은 착잡하다. 공적자금 1백조, 그게 모두 우리 혈세인데. 그래도 안된다니! 분노.허탈, 일할 기분이 안난다.

저 검은 손들을 채워주기 위해 우린 오늘도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저런 조직적인 검은 유착이 가능했을까. 그건 끼리끼리 의리로 뭉쳐 있기 때문이다. 불의를 위해 신의를 잘 지키기 때문이다.

서로 짜고 해먹는 이상 외부에선 알 길이 없다. 부패척결, 사정의 칼을 휘두르지만 내부의 고발이 없는 한 공염불이다.

설령 양심적 인사가 있다 한들 한국적 풍토에서 고발이 쉽지 않다. 의리 없는 사람, 배신자로 낙인 찍혀 무리로부터 아주 소외, 인간 실격자로 취급된다.

청문회가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윗분은 모릅니다. 제가 했습니다. " 누가 들어도 거짓말이다.

하지만 시중의 여론은 오히려 의리 있는 사람으로 치켜세운다. 그 거짓말쟁이를 존경까지 한다. 이게 의리를 숭상하는 우리 민족의 맹점이다.

기가 찰 일이다. 의리란 옳은 일을 위해서 지켜야 할 본분이 아니던가.

서구는 불신을 전제로 하는 사회여서 분명한 의사전달, 타협, 그리곤 확실한 계약을 문서로 남긴다.

그도 부족해 증인도 세우고 공증까지 한다. 누구도 나중에 딴소리 못한다. 거짓말? 하려야 할 수도 없고, 했다간 그 인생은 끝장이다. 계약을 어기면 엄중한 벌칙이 가해진다. 불신에서 출발한 계약 관행이 오늘에야 훌륭한 신용사회를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는 믿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다. 청문회가 거짓말대회로 되는 것도 그래서다. "저 사람이 그랬다." "난 그런 말 한 적 없다."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인데 가려낼 재주가 없다.

증거가 있어야지. 모의하는 과정에선 서로 믿는다는 묵계가 되어 있었겠지. 그러니 탄로가 나도 떠넘기면 그만이다. 이렇게 해서 부패의 사슬이 이어진다.

그러나 이 고리를 끊지 못하면 우리에겐 희망이 없다. 눈앞의 1만달러 고지도 그림의 떡이다. 광활한 국토, 풍부한 자원을 갖고도 이 고지에 못 올라서는 남미가 좋은 예다.

부패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한때 올라섰다. 하지만 며칠을 갔던가. 썩은 기초 위에 화려한 궁전이 들어설 순 없는 법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열린 사회다. 그러기 위해선 공범관계가 될 수 있는 사이에 적당한 '불신' 의 벽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적절한 긴장.견제가 될 수 있다.

서로 불신하라니? 그게 어찌 사람 사는 사회냐? 한국적인 인정론자는 펄쩍 뛸 것이다. 하지만 불의를 위한 의리는 없다. 이 냉엄한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의분을 느끼고 고발할 수 있어야 한다. 배신자로 취급할 게 아니고 진정 용기있는 사람으로 존중돼야 한다. 그리고 충분한 보상도 마련돼야 한다. 선진국에선 이런 법이 제도적으로 잘 돼 있다.

서로 살피고 견제하는 눈이 많을수록 깨끗하고 도덕적인 정부가 된다. 모든 사람에게 열린 조직이 공명사회의 첩경인 것은 그래서다. 이것 없이는 어떤 나라도 발전에 한계가 있다는 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부패방지특별법이 국회 계류 중이다. 법보다 문제는 우리의 의식구조다. 떳떳이 열어야 한다. 열어놓고 공개적으로 하면 비자금이니 뇌물이니 하는 음습한 것들이 헤집고 들어설 틈이 없어진다.

거센 노조 때문에 기업이 안된다고들 울상이지만 경영을 공개해 보라. 회사 사정을 뻔히 알면서 무리한 요구를 할 턱이 없다. 열어야 모든 사람이 감시자가 될 수 있다.

감시란 물론 서로가 믿지 못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래야 비로소 믿을 수 있는 조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이시형 <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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