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실거래가 신고시스템 어떻기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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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경기도 화성 동탄신도시 푸른마을두산위브의 전용면적 82㎡ 아파트의 실거래가 3억1000만원. 물론 신고된 가격이다. 하지만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실거래 신고가가 터무니없이 낮다. 급매물도 4억원에 나온다”고 말했다. 인근 능동 포스코더샵2차 85㎡형의 실거래 신고가는 3억원이다. 이 동네 중개업자들은 “급매물이라도 시세가 3억5000만원 이상”이라고 말한다.

정작 국민은행은 이 지역의 시세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부분 아파트 준공 후 절반 이상만 입주하면 시세를 작성하는 것과 다르다. 왜 그럴까. 국민은행 담당자는 익명을 전제로 “신뢰할 만한 시세 정보를 제공해 주는 중개업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현재 전국 1만4000여 개의 아파트단지 시세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수도권만 해도 동탄신도시를 비롯한 서울 은평뉴타운 등 20여 곳의 시세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 담당자는 “다운계약서 담합 의혹이 있는 곳은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설명했다.

금융사들은 국민은행 시세가 없는 단지에 담보대출할 때 별도의 약식 감정이나 외부 감정평가업체의 평가를 받아 담보가치를 헤아린다. 이에 따라 돈을 빌리는 사람은 금융사가 요구할 경우 약식감정이면 최고 3만~5만원, 정식 감정평가이면 수십만원까지 부담해야 한다. 결국 다운계약서로 이득을 보는 소수 때문에 애꿎은 피해자만 생기는 셈이다.

다운계약서를 작성해 세금을 탈루하려는 시도는 현행 ‘실거래가 신고시스템’으로도 잡아내기가 어렵다. 실거래가는 중개업자나 직거래 당사자가 관할 기초자치단체에 신고한다. 이때 신고가의 적정성 여부는 1차적으로 국토해양부에서 판단한다. 국토부는 국민은행 시세와 감정평가액, 부동산 업체의 호가 등 여러 자료를 종합해 기준가격을 설정한다.

이때 분란을 피하고자 기준가격의 범위를 정한다. 가령 시세가 3억원일 경우 2억5000만~3억5000만원을 기준가격으로 정하는 방식이다. 기준가격이 설정되면 이를 바탕으로 신고가격을 따진다. 국민은행이 시세 제공을 거부하는 지역은 자료 부족으로 신고가격의 허위 여부를 따지기 어렵다. 턱없이 높은 가격이나 낮은 가격도 여과 없이 일반에 공개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허위 신고를 적발할 기준이 부실하다는 점은 업·다운 계약을 부추기는 요인이기도 하다.

통상 국토부는 실거래가와 기준가격 차이가 크면 관할 기초자치단체에 해당 거래를 조사하라는 공문을 보낸다. 그러나 기초단체의 행정력으로는 현장조사를 할 엄두도 못 낸다. 대부분의 기초단체에서 해당 업무를 보는 사람은 한 명에 불과하다. 다운계약이 잦은 동탄신도시를 관할하는 화성시는 동부출장소에 직원을 보내 별도로 업무를 처리한다. 그러나 공문과 민원 접수가 주 업무라 사무실을 비울 수 없다. 국토부에서 내려온 사항을 공문처리해 발송하고 소명자료를 받아 살펴보는 게 전부다. 익명을 원한 화성시 관계자는 “우편물을 보내면 반송되는 경우가 많고 전화를 하면 해외에 체류 중인 경우도 허다하다”며 “편의를 위해 최대한 기다렸다가 자료를 받는다”고 말했다.

소명을 거부할 경우 최고 2000만원까지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관련 업무를 본 지 6개월 정도 됐다는 이 공무원은 과태료를 부과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사전에 입을 맞춰 서류를 꾸민 탓에 적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금추적권이 없어 다운계약이 의심돼도 파고들 수 없다. 지자체의 ‘표심 살피기’도 한몫한다. 익명을 요구한 국토부 관계자는 “선출직인 지방자치단체장의 특성상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과태료 부과, 부당거래 적발 등 부정적 행정 처리엔 적극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문제점을 알고 있다. 국토부는 이르면 다음 주부터 실거래가 신고 시스템 전반에 관한 대대적인 실태조사에 나선다. 우선 응급 처방으로 업·다운 계약서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는 실거래가를 허위 신고하더라도 취·등록세의 3배, 양도세 40% 가산세를 부과하는 수준이다. 익명을 원한 국토부 관계자는 “2006년 도입 당시 종부세 등 조세 저항이 극심해 처벌 수위를 낮출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 처벌 수위를 한 단계 높일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토부 관계자도 “허위신고는 정확한 부동산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국토부의 업무를 방해하는 것으로 실질적 공무방해죄”라고 강조했다. 공인중개사가 아닌 법무사나 부동산 컨설팅 업체 관리도 강화할 방침이다. 중개사들만 관리해선 법무사 등을 통한 직거래 업·다운 계약을 근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일한·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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