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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프런트] “역주행하다 사고 유발한 폭주족 차량은 흉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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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주말과 국경일에 기승을 부리던 폭주족에 대해 지금까지 경찰은 도로교통법을 적용해 처벌했다. 대부분의 폭주족은 벌금형을 받고 끝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3조’를 적용했다. 이 조항은 흉기를 사용하거나 집단적으로 폭행한 경우 단순 폭력에 비해 엄하게 처벌한다. 3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게 돼 있다. 폭주 차량의 역주행을 ‘흉기를 사용한 집단적 폭행’으로 본 것이다. 지난해 12월 20일 새벽 2시쯤. 서울 성동구 뚝섬 부근에 4대의 승용차와 50대의 오토바이가 모여들었다. 폭주족들이었다. 이들은 무리를 지어 어린이대공원과 화양사거리를 거쳐 성동교 쪽으로 달렸다. 화양사거리를 400m 정도 지났을 무렵, 폭주에 가담해 아반떼 차량을 몰던 최씨는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을 시도했다. 시속 70㎞로 반대 차선을 달렸다. 이때 반대편 1차선에서 마주보고 달리던 택시가 갑자기 나타난 최씨의 차량을 피하기 위해 오른쪽으로 핸들을 급히 꺾었다. 2차선에는 류모(63)씨가 몰던 또 다른 택시가 달리고 있었다. 갑자기 자기 차선으로 들어온 택시를 피하기 위해 류씨도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두 택시는 추돌사고를 냈다. 류씨의 택시는 추돌 후 미끄러져 인도변에 있는 가로등을 들이받았다. 이 같은 상황은 택시의 블랙박스에 그대로 기록됐다. 류씨는 치아 4대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역주행 폭주로 사고를 유발한 최씨는 도망쳤다. 경찰은 목격자 진술과 택시 블랙박스 영상을 바탕으로 최씨를 추적해 1월 초 붙잡았다. 최씨는 수사 과정에서 “반대 차선에 차가 오는 걸 보고 들어간 것이 맞다. ‘내 실력이 최고’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역주행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법원은 흉기의 범위를 비교적 좁게 해석했다. 깨진 유리조각, 부러진 걸레자루, 각목, 가위, 벽돌 등이 흉기로 분류된 바 있다. 지난해 5월 인천지법이 폭행에 사용된 여성의 하이힐을 흉기로 판단해 화제가 됐다. 당시 법원은 이번 사건과 마찬가지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3조를 적용했다. 가해자는 징역 2월6월을 선고받았다. 검찰과 경찰 관계자는 “상대가 다칠 것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역주행을 했기 때문에 이에 활용된 차량은 어떤 흉기보다 치명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역주행과 중앙선 침범, 신호 위반은 폭주족의 단골 메뉴다. 달리는 택시 문을 열고, 사이드 미러를 발로 걷어차기도 한다. 폭주족 최씨는 사고 후 도망을 쳤지만 ‘도주 차량(뺑소니)’ 혐의를 적용받지는 않았다. 검찰과 경찰 관계자는 “뺑소니는 기본적으로 부주의로 사고를 일으킨 과실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고의로 상대를 폭행한 것으로 간주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강인식·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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