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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맨얼굴 드러낸 덕수궁 석조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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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덕수궁 석조전 3층 알현실 자리. 왼쪽 사진은 1918년 당시 모습이다. 2005년까지 전시실로 사용되던 현장의 벽면을 뜯어보니 아치형 출입문, 벽난로와굴뚝 흔적이 드러났다(오른쪽). 샹들리에부터 가구, 패브릭까지 고종 당시 모습으로 복원될 예정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잃어버린 제국의 꿈을 담은 덕수궁 석조전이 옛 모습의 흔적을 드러냈다. 문화재청은 서울 정동 덕수궁(사적 124호) 내 석조전 원형복원 공사 중 건물 내부 벽체에서 건립 당시의 모습을 확인하고 이를 2일 언론에 공개했다.

석조전은 고종황제의 처소 겸 집무실로 건립된 서양식 근대건축물이다. 서양식 건축물은 흔히 일제가 지은 것으로 오인 받곤 한다. 하지만 석조전은 대한제국 황실의 주도로 1900년 착공, 1909년 경 완공해 1919년까지 정궁으로 사용했다. 설계는 영국인 J R 하딩이 맡았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석조전은 고종이 서구 열강과의 외교를 통해 제국을 살리려는 노력을 펼친 역사적 장소였다”고 말했다.

조선의 궁궐은 침전(왕의 침소)과 정전(업무 공간)이 분리되어 있으나 석조전은 두 기능이 통합된 건물이었다. 1층은 상궁처소·주방 등 시종들의 준비공간, 2층은 접견실·귀빈실·홀 등 업무용 공간, 3층은 침실·욕실·알현실 등 황제의 사적 공간이었다. 그러나 일제시대를 거치며 그 모습은 크게 변경됐다. 1933년 이왕가 미술관, 45년 미소공동위원회 사무실, 55년 국립중앙박물관, 73년 국립현대미술관, 87년 궁중유물전시관으로 전용됐다.

문화재청은 3년 계획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석조전 원형복원 공사를 시작했다. 대한제국기의 사진 등 자료가 남아있어 그 원형을 80%가량 짐작할 수 있었지만 최초의 설계도면은 남아있지 않았다. 수 차례 리모델링을 거치며 덧바른 시멘트를 뜯어내자 붉은 벽돌로 지은 맨몸이 드러났다.

3층에서만 아치형 출입문 5곳, 벽난로 흔적 8곳, 욕실 2곳 등이 확인됐다. 천정에선 벽이 있었던 자리의 흔적이 나왔다. 넓은 전시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벽을 트고 기둥을 없애고, 벽난로는 벽돌 등으로 메웠던 것이다. ‘KOR’이란 영문이 찍힌 천정의 철판도 발견됐다. 건축 자재가 영국에서 조달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쪽창도 발견됐다.

석조전 복원을 총괄하는 아름터 건축사사무소 김석순 대표는 “조사결과 1933년과 38년에 평면이 바뀌고, 6·25 이후 실내 마감이 변경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조사를 더 진행하면 각 공간의 용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샹들리에·가구 등의 인테리어도 원형대로 복원할 계획이다. 문화재청 궁능문화재과 최길섭씨는 “석조전과 같은 시기에 비슷한 양식으로 건축된 일본 도쿄 아카사카의 영빈관이 76년 대규모 복원을 하며 발간한 보고서에서 자세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궁박물관에도 황실 가구 등의 유물이 일부 남아 있다.

복원이 완료되면 대한제국의 역사를 알리고 교육하는 ‘대한제국역사관’(가칭)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건무 청장은 “고종황제 일가의 모습을 밀랍인형으로 재현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이경희 기자 , 그래픽=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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