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랜드마크를 찾아서] 8. 프랑스 리옹 '매종 드 라 당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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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리옹에선 '과거' 가 느껴진다.

아무리 프랑스 제2의 상업도시이자 금융 중심지라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르네상스.로마 유적이 즐비한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유적지, 아니면 생텍쥐페리와 뤼미에르의 고향으로만 리옹을 기억하려 한다.

다른 유럽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리옹 역시 문화에 있어서만큼은 화려한 옛 영화(榮華)에 기대어 사는 셈이다.

하지만 이 과거의 도시를 현재진행형으로 바꾸는 장소가 있다. 바로 유럽의 유일한 무용전용극장인 매종 드 라 당스다.

프랑스어로 '무용의 집' 을 뜻하는 매종 드 라 당스는 객석이 1천1백여개에 불과한 규모지만 유럽의 어떤 대규모 오페라 발레 극장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매종 드 라 당스가 세워진지 꼭 20년만에 리옹이 유럽, 아니 전세계의 '춤의 수도' 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발레 종주국 프랑스의 자존심인 파리 오페라 발레를 비롯해 수많은 명문 발레단이 상주한 오페라극장들이 도시마다 박혀있는 다른 유럽 도시들을 제치고 리옹이 '춤의 수도' 로 불리우는 까닭은 특정 장르에 한정하지 않고 모든 춤을 수용한다는 점 때문이다.

매종 드 라 당스는 개관초부터 프랑스 국내외, 전통과 신생 단체를 가리지 않고 새로운 춤의 경향을 보여주는 단체라면 모두 무대에 세웠고, 바로 이런 정책 때문에 프랑스 현대무용이 한걸음 더 발전할 수 있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현대무용가 마기 마랭도 신인시절이던 1980년 매종 드 라 당스 개관공연 무대에 서면서 주목받기 시작해 매종 드 라 당스와 함께 성장해온 예술가다.

또 매종 드 라 당스 예술감독 기 다르메 주도로 84년부터 시작한 리옹 댄스 비엔날레도 세계 각국의 춤을 소개해 프랑스 현대무용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

매종 드 라 당스는 3천5백만 프랑에 달하는 연간 운영예산의 25%가량을 프랑스 문화부와 리옹시 등에서 보조받는다.

하지만 정부 산하 기관은 아니다. 1979년 몇몇 지역 무용가들이 무용전용관을 세우자는 뜻을 모아 1년여를 준비한 끝에 80년 리옹 크루아 루스 극장(7백석)을 터전으로 한 매종 드 라 당스를 열었다. 그리고 92년 현재 극장이 위치한 리옹 8구역으로 극장을 옮겼다.

68년 프랑스 건축가 피에르 부르디(Pierre Bourdeix)가 설계한 현재의 매종 드 라 당스는 리옹 외곽에 자리잡은데다 전철역과 멀리 떨어져 있어 관객 접근성 측면에서 마이너스 요소가 많은 극장으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92년 이 극장이 들어선 이후, 90만명의 관객이 찾아 이 지역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리옹 시청과 오페라 극장이 들어선 시내 중심지를 방불케할만큼 사람들로 붐빈다.

공연 횟수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한달동안 선보이는 네다섯개 팀의 공연 대부분이 매진을 기록해 매종 드 라 당스 한해 예산의 절반 가량을 티켓 수입으로 충당할 정도다.

1999/2000 시즌에만 모두 17만명의 관객이 들었고, 이 가운데 1만4천명은 이 극장 정기회원이었다. 리옹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규모가 큰 리옹 오페라 극장 관객수보다 더 많은 관객을 동원한 셈이다.

이미 국제무대에서 검증된 단체 뿐만 아니라 젊은 안무가들의 신작도 과감히 올리는 데 비해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많은 관객이 찾는다는 점은 '춤의 수도' 리옹의 미래가 더욱 밝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렬한 현대무용 팬이라는 도미니크 브리도는 "매종 드 라 당스에서 하는 공연은 무엇이든 믿음이 간다" 며 "이름도 생소한 아시아 단체의 공연처럼 모험심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지만 한번도 실망한 적은 없었다" 고 말한다.

매종 드 라 당스는 엄청난 건축비를 들여 새롭게 건물을 짓지 않고도 쓰임새를 새롭게 함으로써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리옹=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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