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향기로운 어른동화 '모닥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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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모닥불' 은 모두 23편의 짧은 우화를 묶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 다.

세파에 시달려온 어른들의 마음을 아이들의 마음처럼 깨끗하게 닦아보자는 시인의 마음이 담겨진 책이다.

시인이 아이의 눈으로 어른을 겨냥해 우화형식으로 썼기에 가볍고 잔잔하고 여리고 슬픈 것들로 가득하다.

소재는 다양하다. 모닥불이 된 뗏목, 보신각 종을 울리는 종메가 된 나무, 고물로 퇴역한 증기기관차 등등 세상 한쪽 켠으로 밀려난 모든 사소한 것들이 주인공이다.

갖가지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목소리는 한결 같다. 바로 사랑이다. 시인은 어른의 마음을 가장 아이답게 만들어주는 순화의 도구로 사랑을 택했다.

뗏목이 된 나무는 등교길 시골 소녀를 실어나르며 소녀를 사랑하게 되고, 훌쩍 성장해 시집간 소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그러다 어느 겨울날 강둑 위로 끌어올려져 모닥불이 됨으로써 추위에 떠는 사람의 몸을 데워준다.

'나무의 독백' 이란 형식으로 세상 사람들이 잊고 사는 사랑, 그로 인한 기다림과 고통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작가는 "이같은 나무의 고통 때문에 사랑이 위대하고 아름다워진다" 며 독자들에게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길 바란다" 고 당부했다.

책을 충분히 음미하려면 시인 안도현의 권고처럼 '인간으로 나무를 보지말고 나무가 되어 나무를 보는' 마음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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