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주인되자] 6. 더불어 사는 아파트…전기·수돗물 낭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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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아무 생각 없이 누르는 엘리베이터 단추 하나에 내가 부담하는 관리비가 늘고, 동시에 오일달러가 샌다. 공용 수도꼭지에서 흘러내리는 수돗물도 결국은 모두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서울 송파구 D아파트의 단지 내 공용 수도에는 밸브가 없다. 공용 수도에 호스를 연결해 세차하는 얌체족이 늘자 관리사무소에서 물을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밸브를 떼어낸 것이다.

관리원 李모(58)씨는 "그래도 가끔 스패너로 수도꼭지를 열어 세차하는 주민이 있다" 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 원당의 J아파트는 복도 형광등이 밤새도록 켜져 있다. 주민들이 스위치를 올리기만 하고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반상회를 통해 절전 캠페인을 벌이지만 효과가 없다.

'공용은 공짜' 가 아니다. 결국은 함께 거주하는 모두의 비용이다.

1백40가구가 사는 서울 강동구 A아파트. 지난 10월 관리비 총액은 1천2백27만여원이다. 이 가운데 공용 전기료가 1백12만여원, 엘리베이터 전기료가 19만여원. 공용 수도료는 0원이다.

이 아파트는 1년 전만 해도 공용 전기료가 2백만원에 육박하고 엘리베이터 전기료도 40만원 안팎이었다. 부녀회는 우선 엘리베이터 전기료를 줄이기 위해 '한 층 걷기 운동' 을 벌였다.

누군가 12층을 누르면 13층이나 11층의 주민은 따로 스위치를 누르지 않고 12층에서 내려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이다. 공용 수도는 꼭지를 떼어 필요할 때만 쓰도록 했다.

수돗물 헤프기는 우리나라가 세계 으뜸. 유엔에 의해 물부족 국가로 분류된 우리나라의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은 3백95ℓ다. 독일 1백32ℓ에 비해 세배나 된다. 덴마크(2백46ℓ)나 프랑스(2백81ℓ)보다도 많다.

서울 성동구 D아파트의 주부 金모(35)씨는 최근 아파트 저수조 청소.보수 때를 생각하면 이웃들이 야속하다. 단수가 예고됐지만 깜박 잊었다가 뒤늦게 수도를 틀자 물이 전혀 안나왔다. 이웃집에 가보니 욕조뿐 아니라 물통.세탁기에 물이 가득했다.

金씨는 이들이 필요한 만큼만 물을 받았더라면 자신이 물을 얻으러 다니는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란 생각이다.

헤프기는 전기도 마찬가지다. 기온이 뚝 떨어진 8일 밤 경기도 일산 H아파트. 창문으로 비치는 이 아파트의 주민들 대부분은 반소매나 러닝셔츠 차림이다.

에너지관리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정의 겨울철 실내온도는 23~25도다. 미국은 18.3도, 영국은 19도, 일본은 20도에 불과하다. 공단측은 아파트마다 겨울철 실내온도를 1도만 낮추면 연 1천5백여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인천시 동춘동의 대우.삼환단지는 지난해 각 가구의 재래식 형광등 2천여개를 32W짜리 고효율 형광등으로 바꾸고 복도와 지하주차장 보안등에 센서를 설치, 사람이 지나갈 때만 켜지도록 해 연간 2천3백만원의 전기료를 줄였다.

에너지관리공단 이관세(李寬世)건물에너지팀장은 "단열 자재나 절전 형광등도 좋지만 입주민들의 생활습관이 비용 절감과 절약의 '그린 아파트' 를 만드는 지름길" 이라고 말했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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