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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레이더 기밀’ 5년치 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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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한·미 양국이 수집한 북한의 전자정보가 현역 장교의 묵인 아래 통째로 유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일부 정보는 한·미 연합사 내부의 전산망에서 나간 것으로 조사됐다.

김모(46)씨는 2000년 시스템통합(SI) 업체인 G사를 설립한 뒤 2002년 6월 공군의 적 전파발사체 식별자료(EID) 사업을 수주했다. EID 사업은 북한 레이더에서 나온 전자신호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다.

2003년 2월 중간 점검 기한이 다가오는데도 프로그램 개발은 부진했다. 김씨는 실무자인 전모(40) 중령을 만나 “기한에 맞추려면 ‘일일전자정보’를 사무실로 가져가 작업을 해야 한다. 허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전 중령은 처음엔 “프로그램 개발 장소가 군 시설 내로 제한돼 있다”며 거절했으나 김씨의 거듭된 요청에 묵인해 주기로 했다. 김씨는 하도급 업체 직원인 신모(41)씨와 함께 2급 비밀인 ‘일일전자정보’ 5년치 데이터를 노트북 컴퓨터에 복사했다. A4 용지로 20만 장 분량이었다. 이 데이터는 한·미 정찰기 등이 입수한 북한군 레이더 시설의 위치와 성능 정보에 관한 것이었다. 김씨는 또 미 태평양사령부 정보체계에 연동된 전산망에 접속해 ‘전자정보 요약서’를 빼냈다. 같은 해 10월 2차 사업을 따낸 김씨는 다음 달인 11월 “군 부대에서 개발을 하면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군사기밀을 추가로 가져가는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기밀을 유출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김씨에 대해 군사기밀보호법상 수집·탐지·유출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1일 밝혔다. 김씨는 2005년 11월 회사가 부도난 뒤 일본으로 출국했다. 여권만료로 지난달 28일 입국했고 공항에서 바로 체포됐다. 전 중령 등 장교 2명은 기밀보호 업무를 소홀히 한 것으로 드러나 징계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개발 편의를 위해 정보를 유출했다”고 진술하고 있으나 검찰은 김씨가 돈을 받고 군사기밀을 다른 나라로 넘겼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 중이다. 군 안팎에서는 한·미 연합사 전산망에서 일부 정보가 흘러나간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향후 한·미 군사협력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철재 기자

◆전자정보(ELINT·Electronic Signals Intelligence)=적 레이더의 위치와 성능을 파악하는 등 전자 장비를 이용해 통신 이외의 전자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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