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누가누가 잘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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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면 이름이야말로 인격이다. 그러니 이름에 대한 모독은 참기 힘든 것이다.

KKK가 누구 누구라는 소문이 있는데 맞습니까? 형식은 점잖은 질문이었지만 내용은 폭로였다. 증거가 없는 폭로, 소문에 의한 폭로. 무참히 부서진 이름들은 부서져도 좋은 이름들이었나, 억울한 이름들이었나.

폭로한 야당의원은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할까, 명예를 잃으면 다 잃는 사람들을 소문만으로 몰아붙였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가질까. 그들처럼 이름이 중요한 그는 그 발언으로 명예가 빛날까, 명예를 잃을까. 그는 악인을 잡는 덫을 만든 걸까, 스스로 악인이 되는 덫에 걸린 것일까. 그 발언이 한나라당에 힘이 될까, 짐이 될까.

소문만으로 남의 이름에 오물을 끼얹은 행위는 분명 비겁한 것이다. 오셀로에 나오는 이아고의 말이 생각난다. 위험한 억측은 독약과 같다고.

아, 면책특권은 정말 매혹적이다. 비겁함도 죄가 되지 않으니까. 그러나 매혹적인 만큼 또 얼마나 위험한 것일까. 그러니 여당의 일각에서 면책특권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밖에.

글쎄, 그럴까□ 혹시 빈대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짓은 아닐는지. 군사정권 때도 지켜져 왔던 것이 면책특권이다.

면책특권은 분명 특권이지만 기득권은 아니다. 오히려 부당한 기득권을 폭로하고 그에 저항하는 수단이었다.

그것은 확인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기 위해 있어야 하는 것이었고, 기존의 낡은 허물을 벗기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이었다.

정보를 쥐고, 검찰의 인사권을 쥐고, 권력을 쥔 강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니 사실을 확인하고 확인된 사실로서 다시 부패를 거둬내는 힘이 될 때 면책특권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렇지만 도(道)가 깊으면 사(邪)도 깊듯이, 면책특권이 언제나 아름답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땐 어떡하나? 면책특권이 방패가 돼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방패 뒤에 숨어 비겁을 옹호하고 있다면, 그러면 어떡하나□ 그 때는 정치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서 선거를 치르는 것이 아닌지. ' 진실이 아니어도 통할 거라고 믿는 경박한 이는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심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히 비겁한 거였는데 한나라당이 당당한 이유는 뭘까. 당당함인가, 뻔뻔함인가.

소문만으로 남의 이름에 오물을 끼얹는 행위가 비겁한 것임을 모르는 것일까. 어쩌면 그 행위가 비겁한 거지만 잘못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그리고 거기에는 믿음이 가지 않는 검찰권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사건과 함께 터진 검찰 출신 민주당 한 초선의원 사건은 확연한 의문부호를 찍게 한다.

검찰서열 2위인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지낸 그 사람. "검찰의 힘을 빌려서라도 정치판을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고, 검찰 재직시 따르는 몇몇 검사들에게 그런 방안을 연구해 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나. 그가 정말 몰랐을까. 검찰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주는 게 정치판 개혁의 기본이라는 걸. 정말 괜찮은 검사들이 검찰을 지키기 위해 하는 싸움이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중립이고 그것이야말로 검찰권의 독립이라는 것을.

그런 기본적인 사실도 망각한 사람이 검찰의 수뇌부에 있었다면 그 밑에 있었던 검사들은? 고뇌가 컸을까, 그의 입맛에 맞게 행동해야 했을까.

그 여당의원이 계속 말을 했나 보다. "정치판에서 퇴출시킬 사람은 퇴출시켜야 하며 집권여당이 그만한 힘도 없다면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된다" 고. 검찰의 4.13 총선 수사를 야당이 왜 편파라고 주장하는지 알 것 같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이 선거로서 해야 할 일을 집권여당이 힘으로 할 수 있다고 믿는 이 발상은 얼마나 전근대적인가.

그는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아니, 그게 실수였을까. 실수가 아니라 몸으로 익힌 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고백 같은 것이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문제가 된 야당의원과 여당의원, 누가 더 상식적이지 않은가.

혹시 '누가 누가 잘하나' 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국민이 외면하는 이 비상식이 어떻게 가능한가. 혹시 그들의 이상한 충성심을 즐기고 있는 당지도부가 있는 건 아닌지.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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