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실리콘 밸리 다시 햇살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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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프리몬트로 올라가는 880번 고속도로. 이 도로는 최근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8일(현지시간) 오전 9시 기자가 탄 버스의 기사는 "출퇴근 시간엔 10마일(약 16㎞)을 운전하는 데 45분이 걸린다. 지난해보다 차량속도가 두배쯤 느려졌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새너제이의 유명 쇼핑몰 중 하나인 '샌타나 로(Santana Row)'는 밀려드는 주말 고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 쇼핑몰의 한 피자집 주인은 "이곳에서 식사를 하려면 줄잡아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고 일러줬다.

정보기술(IT)산업의 거품이 꺼지면서 고전하던 실리콘밸리가 인터넷.소프트웨어 산업이 조금씩 살아나는 데 힘입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샌타클래라의 컴퓨터그래픽 카드 제조업체인 엔비디아. 이 회사 주차장엔 1000여대의 차량이 빼곡히 서 있었다. PR 담당자 캐리 코웬은 "실리콘밸리의 경제가 살아나 고용도 다시 늘고 있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한때 주춤했던 이 회사의 매출도 늘었다. 올 상반기에 지난해보다 10% 가까이 증가한 9억28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미국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새너제이의 실업률은 지난해 초 9%대까지 치솟았다가 올 들어 6%대로 낮아졌고 지난 8월엔 5.5%로 떨어졌다. 미국의 경제동향 조사업체인 벤처원은 미국 전역의 지난 2분기 벤처투자액은 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전분기보다 3.3% 감소했으나 실리콘밸리에 대한 투자액은 소폭 늘어난 18억달러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무명 소프트웨어업체는 일약 스타기업이 됐다. 세일즈포스닷컴은 지난 8월 주식 공모가격을 8달러 안팎으로 잡았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몰리자 공모가를 두 차례 올렸다. 또 11달러에 상장한 이 회사의 주가는 거래 첫날 40%나 폭등했다. 또 구글은 지난 8월 주당 85달러에 주식을 공모해 17억달러(약 2조원)를 끌어모았다. 이 공모액은 인터넷업체가 기업공개로 모은 돈 중 가장 많은 것이다.

현지의 한 벤처기업인은 "실리콘밸리의 집값이 최근 오름세를 타고 있고 이곳의 부동산업계는 이를 '구글 효과'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국내 업체들도 앞다퉈 실리콘밸리에 다시 둥지를 틀고 있다.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이 이곳에 설치한 아이파크에는 한글과컴퓨터.넷피아 등이 올해 입주했다. 미래산업.티맥스소프트.엠택비젼 등도 입주를 검토 중이다.

물론 최근 실리콘밸리의 활황세는 4년 전 전성기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곳 기업들은 이웃소싱 비중을 늘려 매출이 늘어나는 만큼 고용이 증가하지는 않고 있다. 유망 통신장비 업체인 주니퍼네트워크는 제품을 모두 인도에서 만든다. 이 때문인지 이곳 IT업종의 평균임금은 3년째 8만달러 선에서 맴돌고 있다. 인포월드에 따르면 올 평균 연봉은 8만3651달러로 전망됐고 이는 지난해의 8만4312달러, 2002년의 8만9385달러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이곳에서 만난 미국 일간지 새너제이 머큐리의 IT 담당 딘 다카하시 기자는 "IT업종 외에 나노기술.생명공학 등의 분야에서도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며 "이곳 사람들의 낙관적인 경제전망이 실리콘밸리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리콘밸리(샌프란시스코.새너제이.샌타클래라)= 윤창희.김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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