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방과후 학교' 대안교육 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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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7일 성남시 분당구 불정동에 있는 방과후 학교인 창조학교. 오후 4시가 되자 학교수업을 마친 초등학생 3학년 아이들 10여명이 모여들었다.

"오늘은 뭘 하나요. " 아이들의 시선이 '엄마 선생님' 인 임선자(36.주부)씨에게 쏠렸다. 임씨는 아이들의 방과 후 교육을 맡고 있는 교사다.

"동사무소에 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볼까" 라는 말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또래 아이들이 보습학원에 달려가 밀린 공부를 하는 사이 이 학교 학생들은 조를 짜 동장과 인터뷰를 하면서 동사무소가 하는 일을 배우고 있다.

이 학교의 수업은 학원이나 여타 방과후 수업과 다르다. 학과 공부는 일절 없다.

인근의 산과 들로 나가 진행하는 생태수업, 자치기.윷놀이 등 전통놀이, 전통음식 만들기, 지역 탐방.협동작품 제작을 통한 공동체 활동 등 다양하다.

이매초등학교 이정연(9)양은 "학교에서는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는데 여기서는 재미있는 놀이도 하고 혼나지 않아서 좋다" 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 고덕주공아파트에 있는 '재미난 방과후 학교' 는 방과 후에 텃밭을 가꾸고 인근 야산을 탐험한다. 요리와 조각보 만들기는 물론 풍물.택견.전래놀이도 즐긴다.

이처럼 신도시나 아파트촌을 중심으로 획일화된 학교나 학원교육을 대신해 학부모들이 나서 환경교육.인성교육 등을 직접 담당하는 공동수업이 확산되고 있다. 학부모 등 지역주민이 직접 나서 아이들의 교육을 맡는다.

1996년 신촌 공동 육아 협동조합을 시작으로 방과후 교실이 만들어진 이후 현재 전국적으로 10여곳에서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방과후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분당 창조학교는 96년 분당과 수지지역의 주민생활협동조합(생협)주부가 중심이 돼 만들어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명문 고교 진학을 목표로 과외를 해야 하는 입시 위주 교육의 현실을 보다 못한 학부모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학부모 대표인 유순주(42)씨는 "학교교육이 이기심과 그릇된 개인주의를 키운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부모들이 스스로 교사가 돼 '더불어 사는 창조적인 아이' 를 키우려 하고 있다" 고 말했다.

방과후 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느티나무 어린이집의 박현숙 원장은 "방과후 학교는 맞벌이 부모 때문에 혼자 있거나 학원을 전전하면서 '놀기' 를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또래와의 놀이문화를 찾아주고 있다" 고 말했다.

한발짝 더 나가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대안학교를 추진하는 곳도 있다. 경기도 부천에서 공동 육아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학부모 20여명은 내년 3월 개교를 목표로 초등학교 과정의 소규모 대안학교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협동조합 형태의 공동출자로 학교를 설립하되 건물.운동장 등의 요건이 까다로운 교육부 인가는 받지 않기로 했다.

전교조 이경희 대변인은 "공교육이 부실해지면서 이같은 형태의 교육이 늘고 있다" 며 "이들의 수요까지 공교육에서 흡수할 수 있도록 학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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