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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개장·짬뽕 먹으면 초조와 짜증이 가시는 이유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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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은 무얼 먹을까?” 인간의 3대 본능은 식욕·성욕·군집(群集)욕이다. 이 중 식욕을 해결하기 위한 메뉴 선택이 만만치 않다. 엄마는 가족을 위한 세 끼 식단을 고민하고, 직장인은 점심 메뉴를 고르기 위해 식당가를 배회한다. 결국 식당에선 한 사람이 선창하면 나머지도 이구동성으로 같은 음식을 주문한다. 하지만 메뉴를 선택하기 전 ‘약식동원(藥食同原)’을 생각하자. 음식은 약과 같으니 식품을 통해 건강을 보살피자라는 뜻이다. 자신의 체질과 그날그날 신체 상태에 따라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식단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우리 전통의학의 지혜다.

황운하 기자

체질, ‘음증’인지 ‘양증’인지 알아야

동양의학에 기초한 ‘약선(藥膳)’은 질병 예방과 치료 작용이 있는 특수한 음식을 가리킨다. 한의학에서는 한약·음식 등에 쓰이는 모든 재료의 효능을 기(氣)와 맛(味)으로 구분한다. 기미론(氣味論)이다. 기는 크게 ‘차갑고 더운 것(寒凉溫熱)’으로, 맛은 ‘신맛·쓴맛·단맛·매운맛·짠맛(酸苦甘辛鹹)’ 등 5가지로 나눈다. 기와 맛을 잘 배합한 재료에 따라 오장육부와 인체 기혈을 활성화할 수 있다. 여기에 자신의 신체 상태가 ‘음증(陰症)’인지, ‘양증(陽證)’인지 파악해 신체에 맞는 음식을 택하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한의학 이론이다.

하지만 약식동원의 효능은 현대의학처럼 인과관계를 확실하게 밝히기 어렵다. 음과 양의 조화를 맞추는 전통적인 경험론에 따른 것이라고 관련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양증과 음증은 서로 대응하는 개념으로 타고나는 신체 상태다. 그러나 두부 자르듯 구분할 수는 없으며 한쪽 증상이 더 많은 쪽으로 이해하면 된다. 음증과 양증의 차이는 알코올 램프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차갑고 습한 알코올이 음증이고,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이 양증이다.

음증인 사람은 손발이 차고 얼굴이 창백하다. 따뜻한 것을 좋아하고 찬 것을 싫어해 여름에도 시원한 물을 잘 마시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신체에 ‘습(濕)’이 많아 콧물이나 가래가 맑고 배 근육이 물렁하다.

양증인 사람은 찬 것을 좋아해 겨울에도 시원한 물을 찾는다. 열이 많고 인체 곳곳에 있는 수분인 진액(津液)이 부족해 피부가 건조하며, 콧물이나 가래 색이 누렇다. 얼굴이 붉은 것도 특징.

어지럽고 기가 뭉치면 더덕구이

양증과 음증은 사람의 신체 상태를 보여주는 한의학의 ‘변증(辨證)’에 따라 세분화한다. 세분화된 신체 상태는 환경 요인으로 바뀔 수 있다. 양증은 크게 담(痰)·기체(氣滯)·어혈(瘀血)로 나눈다.

‘담’은 기(氣)가 뭉친 것이다. 기를 순환시켜 풀어줘야 한다. 담에 좋은 음식은 도라지·더덕구이 등이다.

혈액이 뭉친 ‘어혈’은 맺힌 피를 풀어줘야 한다. 기혈과 혈액순환을 돕는 가물치탕과 혈을 보호하는 오리탕을 먹는다. 아기를 낳은 산모에게 가물치탕이 좋은 것은 어혈을 풀어주기 때문이다.

‘기체’는 기가 원활하게 소통되지 않고 체해서 뭉쳐 있는 상태. 매운맛이 기를 풀어주고 발산하는 것을 돕는다. 매운 조미료를 써서 만든 매운탕류가 도움이 된다.

기체는 기가 체한 장기에 따라 ‘비위기체(脾胃氣滯)’와 ‘간기울결(肝氣鬱結)’로 구분된다.

비위기체는 비장·위 등 소화기에 기가 뭉쳐 있는 것으로, 주로 속이 찬 사람에게 나타난다. 따뜻한 성질의 음식을 택해 소화를 도와야 한다. 양고기를 추천, 양구이·내장탕을 먹는다.

간기울결인 사람은 간에 기가 단단하게 덩어리져 있다. 육개장·짬뽕·비빔밥과 같은 짜고 매운 음식이 기를 풀어주고 혈액순환을 돕는다. 여성들 화병이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매운 음식을 찾는 것이 이런 이유다.

전신 권태, 또는 숨이 차면 삼계탕

음증의 신체 상태는 음허(陰虛)·혈허(血虛)·기허(氣虛)·양허(陽虛) 등 네 가지다.

‘음허’의 음은 우리 몸의 수분인 진액을 의미하기도 한다. 액이 부족하기 때문에 몸을 촉촉하게 하는 삼겹살·보쌈·돈가스 등 돼지고기류가 도움이 된다.

‘혈허’ 상태면 혈액이 부족해 기운이 없다. 혈액이 많지만 순환이 잘 안 되는 것도 해당된다. 굴·해삼·오리알·우유·갈치·흑염소 등이 혈액의 생성과 순환을 돕는다.

혈허인 사람이 파·양파·부추·생강·커피 등 뜨거운 것을 먹으면 음허로 진행한다.

‘기허’는 기(氣)가 허약한 것이다. 항상 기운이 없고 몸이 약한 사람들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 황기·미꾸라지·조기·포도·삼계탕·인삼 등이 궁합에 맞는 음식이다.

‘양허’는 양기가 부족해 으슬으슬 춥고 복통이나 설사를 한다. 계피(수정과)·꿀·흑설탕 같은 뜨거운 재료의 음식이 좋다.

기허인 사람이 녹차·죽순·미나리·시금치·오이·무처럼 찬 음식을 먹으면 양허 상태가 된다. 녹차는 항산화 작용을 하는 플라보노이드가 많아 건강에 좋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찬 음식이기 때문에 몸이 찬 사람들이 많이 마시면 역효과를 볼 수 있다.

기허와 혈허가 같이 나타나는 ‘기혈양허(氣血兩虛)’에는 육류를 섭취하면 된다. 힘들 때 쇠고기 무국을 먹듯이 불고기나 생선회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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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말 한국한의학연구원 김기옥 원장, 군장대 웰빙외식조리계열 박성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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