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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혁 칼럼] '사람문제'를 생각할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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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흔히 신문이 잘 되려면 '스타' 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명성 높은 논객, 아무개 하면 곧 알아주는 대기자.민완기자 같은 스타들이 포진해야 그 신문의 신뢰가 높아지고 독자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런 점은 정부나 정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명(名)장관, 명수석이 있고 "그라면 믿을 수 있다" "그의 정책이라면 안심이다" 고 할 만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면 잘 되는 정부라고 할 수 있다.

*** 오직 DJ만 홀로 우뚝

그렇다면 지금 정부.여당에는 과연 그런 스타가 있는가. 아무리 둘러봐도 스타나 '명(名)' 자를 붙여줄 만한 고위층이나 간부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오직 DJ만 우뚝할 뿐이다. 행정부의 2인자는 총리지만 지금 누가 총리를 명총리 또는 정부의 실력자로 생각할까. 국가적 위기라는 이 상황에서도 총리가 뭘 하고 있는지, 그의 역할은 뭔지, 무슨 의견을 내는지 통 알 길이 없다.

'보수원조' 를 자처하는 자민련총재이면서도 그가 과속(過速)이니 퍼주느니 하는 우려의 소리가 높은 대북정책에 대해서조차 한 마디 말하는 것을 못들었다.

행정부뿐인가. 집권당도 마찬가지다. 2인자라 할 당대표가 있지만 오늘날 민주당대표를 실력자라거나 명대표라고 보는 사람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실권없는 '고용대표' 라고 보는 것이 사실 아닌가. 또 모처럼 대의원이 직접 뽑은 최고위원들도 다수 있지만 그들 역시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경선 때에나 말을 하고 그 후로는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는 그들이 그래도 '최고' 위원인지 알 수가 없다.

이처럼 DJ 외엔 스타도 없고 듬직하게 역할을 해내는 중간간부도 보이지 않는 게 정부.여당의 현실이다.

그러니까 정부.여당의 그 드넓은 공간, 다시 말해 국정의 여러 분야가 제대로 채워질 리가 없는 것이다.

대통령 혼자 그 넓은 공간을 다 채울 수는 없다. 이 정부 출범 이후 만성적인 국정위기가 과연 이런 점과 무관한 것일까.

만일 자격없는 사람을 요직에 앉혔다면 1년에 몇번이라도 바꿔야 옳다. 그렇지 않고 자격있는 사람을 기용해 놓고도 일할 풍토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요직낭비이자 인물낭비가 되고, 국가적 손실이자 여권으로선 전력(戰力)손실이기도 하다.

요컨대 총리나 장관이나 국장이나 자기가 맡은 공간을 공백없이 꽉 채우고 능력껏, 소신껏 일하는 체제가 돼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국장은 장관 눈치 보고 장관은 청와대 눈치를 본다는 지적이 분분하다. 공직자들이 엎드려 눈알만 굴리고 승진과 영전을 기피하는 풍조마저 있다고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것이 이 시절의 최선의 보신책이라고 그들은 믿기 때문이다.

대통령 눈치를 봐야 연명하고 출세하고, 그 눈치를 안보면 불리하고 일도 안된다, 그러니까 눈치를 본다 이렇게 되는 건 아닌가. 본의든 아니든 자기 눈치를 보게 만든 것은 DJ 책임인 것이다.

최근 DJ는 경제를 직접 챙기겠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경제는 특별한 때나 한가할 때 챙길 일이 아니라 항상 챙길 일이다.

남북관계나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같은 큰 일이 있어도 경제는 어김없이 잘 챙겨져야 하고, 심지어 대통령이 평양에서 김정일(金正日)과 승용차를 같이 타고 있는 순간에도 빈틈없이 챙겨져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지 못하더라도 총리나 장관.수석 등에 의해 변함없이 철저히 챙겨지도록 돼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법치요, 제도치(治)다. 제도와 기구와 직책을 두는 까닭이 뭣이겠는가.

경제뿐 아니라 정치.안보.사회… 모든 분야가 다 그런 것이다. 대통령이 체중을 실으면 돌아가고 대통령이 손을 좀 놓으면 안돌아가는 그런 체제라면 국정은 늘 위태롭게 마련이다.

*** 스타가 못 나오는 체제

눈치보기 풍토에서 스타나 명간부가 나올 수 없는 것은 뻔한 일이다. 자기 능력과 뚝심으로 이미지도 만들고 스타도 되는 것이지, 눈치 잘 보고 비위 잘 맞추고 지시 잘 받드는 것으로는 출세는 할지언정 스타가 되긴 어렵다.

소위 말하는 실력자도 능력과 업적으로 돼야지 동교동이니 동향이니 하는 케케묵은 구연(舊緣)으로 권세가 오간다는 것은 일을 잘 하자는 방식이 아니다.

스타가 나올 수 없고 인물이 클 수 없는 체제는 문제해결의 능력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장차 대선도 있고, 또 다시 심각한 위기적 상황을 맞으면서 이 정부가 과연 어떤 사람들을 쓰고 있는지, 쓰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사람문제' 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송진혁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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