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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사나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51호 16면

1974년 11월의 어느 날. 소년은 책방에 전시된 잡지 앞에 오랫동안 서있었다. ‘판치라인’. 표지는 캔버스에 막 쓰러진 사나이의 근접 사진이었다. 사나이는 조지 포먼, 잡지는 그해 10월 30일에 열린 포먼과 무하마드 알리의 헤비급 타이틀매치 특집이었다.

소년은 알리를 싫어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던 알리. 알리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닌 인물인지는 나중에 알았다.74년의 소년은 화재로 기둥만 남은 청량리 ‘대왕코너’ 2층에 베니어판으로 바람막이한 권투도장의 수강생이었다. 스파링할 기회도 없는데 눈두덩에 기름칠을 하고 모래주머니를 두들겼다. 챔피언 될 생각은 없었고, 태권도장 다니는 반장을 때려주고 싶었다.

소년에게 권투란 이런 운동이었다. 상대 턱밑에 머리를 박고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쉬지 않고 주먹을 던지는. 너저분하게 날아드는 잽 따위는 어깨 너머로 흘린 다음 상대의 턱에다 던져 넣는 훅 한 방. 모름지기 권투란 훅의 스포츠고, 훅은 곧 링 위에 선 사나이의 언어였다. 나비처럼 나는 건 권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소년의 영웅은 조 프레이저였다. 프레이저의 가장 멋진 승리는 알리와의 1차전이었다. 15회에 그는 백 스텝의 명수 알리를 끝까지 따라가 폭탄 같은 왼손 훅을 터뜨렸다. 뒤로 쓰러진 알리는 곧 일어나 해파리처럼 흐물거리며 버텼다. 프레이저의 전원일치 판정승이었다. 전진밖에 모르는 권투 선수였기에, 포먼과의 경기는 장렬했다. 여섯 번이나 다운당한 끝에 KO로 졌다.

이런 권투 미학의 소유자에게 알리의 승리는 짜증 나는 사건이었다. 판치라인은 알리의 승전보를 화려하게 묘사했다. “글러브로 턱을 탐스럽게 감싼 알리는 로프를 등진 채 춤을 추듯…” 이런 빌어먹을. 로프에 기대 춤이나 추는 게 무슨 권투란 말이냐. 비겁한 ‘떠버리’(알리의 별명)를 분쇄하지 못하고 산화한 철권의 패배는 소년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소년이 권투를 배운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아들의 귀가 시간이 늦어지자 부모님께서는 ‘탈선’을 우려하셨다.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사범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청량리 로터리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휙 돌아본 대왕코너는 사뭇 을씨년스러웠다. 소년은 권투를 다시 하지 않았다. 반장과 결투를 한 건 한참 뒤의 일이다.

소년은 중년이 되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권투에 관심을 갖게 된다. 김지훈을 발견한 뒤의 일이다. 김지훈은 “때리고 맞는 권투 자체를 좋아한다. 더 강한 상대와 싸우고 싶다”고 말했다. 종합격투기 선수 김동현이나 추성훈도 한 말이다. 스포츠 평론가 정윤수가 썼듯이, 권투는 ‘강한 주먹으로 말하는 운동’이다. 입이 아니라 주먹으로. 김지훈은 매혹적이었다.

김지훈은 최근 가지고 있던 IBO(국제복싱기구) 타이틀을 반납했다. 더 큰 기구의 더 경쟁이 심한 체급에서 더 강한 선수와 싸우고 싶어서라고 한다. 축구에 ‘꽂혀’ 중학교를 중퇴하고 축구에 인생을 건 이청용처럼, 김지훈도 권투에 꽂혀 청춘을 던진 승부사다. 벨트를 벗어 허전한 그의 허리에 더 큰 벨트가 감기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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