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막았던 승엽, 친구의 훈수에 귀를 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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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이 29일 일본 출국에 앞서 밝아진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말을 아끼고 싶다.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각오를 드러냈다. [연합뉴스]

일본 프로야구 이승엽(34·요미우리)이 찾은 부활 해법은 스스로를 낮추고 주위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이승엽은 두 달간의 국내 훈련을 마치고 29일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11월 귀국했을 때 기죽고 자책했던 표정과는 달랐다. 그는 겨우내 느꼈던 일, 새 시즌을 맞는 각오를 차분한 목소리로 풀어 갔다.

◆친구의 조언에 귀 기울이다=이승엽은 “지난해엔 거의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이번 겨울 여러 사람에게 부진 이유를 물었는데, 친구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1995년 삼성 입단 동기인 김승관(34) 대구 상원고 코치다. 이승엽은 “스윙에 나쁜 버릇이 있었다. 친구가 조심스럽게 몇 가지를 지적했다. 상체, 특히 손에 힘을 빼고 치라는 것이다. 나는 몰랐던 부분이다. 어찌 보면 기본 중에 기본인데 잊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둘의 인연은 특별하다. 원래 투수였던 이승엽이 왼 팔꿈치 부상 때문에 위기를 맞았을 때 코칭스태프에 “승엽이는 방망이도 잘 칩니다”고 귀띔했던 사람이 김승관이다. 이승엽이 타자로 전향하게 된 계기다. 이승엽이 삼성에서 9년간 324홈런을 때리는 동안 김승관은 1군에서 92경기만 뛰었다. 성적을 보면 비교할 수 없는 친구의 말을 귀담아 들을 만큼 이승엽은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먼저 다가가 문제점을 고치겠다=이승엽은 “지난해 요미우리에서 연수했던 김한수 삼성 코치와도 많은 얘기를 나눴다. 난 원래 고집이 세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그래서 슬럼프가 길었던 것 같다. 2월 1일 미야자키에서 시작하는 팀 스프링캠프 때부터 코치들을 먼저 찾아가 문제점을 물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김성근 SK 감독 등 몇몇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감히’ 이승엽에게 훈수 두기를 망설였다. 그러나 이젠 이승엽이 먼저 다가서기로 한 것이다.

◆실패를 통해 주위를 돌아보다=올 시즌 뒤 요미우리와 계약이 만료되는 이승엽은 “마지막 기회다. 반드시 주전경쟁에서 이겨 30홈런·100타점을 올리고 싶다. 좋은 성적을 거둔 뒤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국내에서 이승엽은 몸보다 마음을 추스르며 “심장이 강한 남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실패의 시간들은 이승엽에게 주위를 돌아보게 했다. 그는 “지금까지 내가 사는 것에만, 운동하는 것에만 신경 썼다. 그런데 여러 사람을 만나니 세상의 어려움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출국 전 대학병원 어린이 병동을 찾아 성금을 맡기고 환우들과 어울렸다. 또 투병 중인 고교 야구선수를 남몰래 돕기도 했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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