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퇴출…전문가·외국인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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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차 퇴출기업 명단을 접한 전문가들과 시장의 반응은 한마디로 시큰둥했다.사흘전 동아건설 퇴출결정 때 보여준 흥분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비판 중에는 "퇴출기업이 대부분 이미 죽어가는 기업들"이라며 "겨우 이 정도를 갖고 그렇게 요란했느냐"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특히 관심의 초점이었던 현대건설과 쌍용양회의 처리방법에 대해 미심쩍어 하는 반응이 많았다.채권단이 자력 갱생을 하지 못하면 퇴출시킨다고 언급했으나 시장은 반응은 냉정했다."두 회사의 경우 실제로는 주거래 은행이 지원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있다.시한폭탄의 시계를 뒤로 조금 늦춘 것이 아니냐"(키움닷컴증권 안동원이사)는 얘기다.

현대건설의 경우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조건부 회생으로 결론지었다면 경영책임을 물어야 한다(조명현 고려대 교수)는 주장도 제기됐다.

외국인들의 반응도 비슷했다.한국에는 여전히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통한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조치는 결국 시장의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없앴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LG투자증권 김주형 상무)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결국 앞으로 부실기업 처리는 일회성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한꺼번에 몰아서 해 보니 소리만 요란하지 실속이 없다는 지적이었다.이를 위해서는 은행권이 잠재부실을 안고 있지 말고 현재화시킬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견해도 제시됐다.

◇청산대상은 이미 죽은 기업들=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경제학)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 였다.이미 시장에서 퇴출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기업들을 정리한 수준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보다 강도가 약해졌다.이 정도로 신용경색이나 부실기업의 덤핑 등으로 인한 산업 부실화를 해결할 수 있을 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온기선 동원경제연구소 이사는 "큰 것들은 다 살리고 청산하는 것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기업들 뿐이다.여신 규모가 큰 기업들을 퇴출시키게 되면 당장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져 은행 스스로 견디기 어렵게 되는데 어떻게 과감히 퇴출시키겠나.채권은행단에 부실기업 평가를 맡긴 것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건설 처리 문제있다=키움닷컴증권 안동원이사는 "현대건설·쌍용양회의 경우 채권단은 앞으론 두 기업이 스스로 알아서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주채권은행이 지원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장이 너무 나쁜 상태이기 때문에 덩치가 큰 두 곳을 동시에 퇴출시키는 것을 걱정하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SK증권 이충식 상무는 현대건설 퇴출 유보에 대해 "채권단의 입장은 현대를 압박해 보다 강도높은 자구를 강제하겠다는 정도로 해석된다.현대건설과 쌍용양회가 이런 식으로 처리될 것으로 시장은 이미 대충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외국인들의 반응도 부정적="오늘 조치로는 역시 한국에는 '대마불사'라는 비시장적인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만 확인했다.

퇴출기업 숫자가 매우 실망스럽다.작은 기업들만 몇 개 포함되어 있을 뿐 실질적으로 부실규모가 큰 대형기업들은 하나도 없다.외국인들은 이번 조치로 불확실성이 전혀 해결됐다고 보지 않는다."(마르크 프아리에 SG증권 서울지점장)

"과거 1차 기업 퇴출 당시에도 일부 작은 한계 기업들이 퇴출된 것 말고는 기업의 경영 관행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과거와 똑같은 충격 요법은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크리스토퍼 가드너 ING베어링중권 기업금융부 이사)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지지부진했던 기업 구조조정을 시작하는 계기를 삼았다는데 의의가 있다.시장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선 것으로 긍정적으로 본다"고 조명현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말했다.

그러나 그는 "조건부 회생으로 분류된 현대건설에 대해서는 경영책임을 물어야 한다.김윤규 사장과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 등은 물러나야 하며,대주주의 책임을 묻는 조치도 있어야 한다.이번에 어물쩍 넘어간다면 정말 큰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세종법무법인의 박직원 변호사는 "기업 구조조정에 불만도 있지만 60% 쯤은 익은 작품으로 본다.현대건설의 경우 이번에도 자구노력을 이행하지 않으면 반드시 법정관리로 보낸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람직한 부실기업 처리는=김기원 방통대 교수는 "부실 처리는 일상적으로 평소에 해야 한다.그렇게 하려면 은행권이 잠재부실을 안고 있지 말고 현재화시킬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특히 기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금융권의 부실을 정부가 묻지 않는다든지 하는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그는 이어 "부실경영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뒤따라야 한다.경영주 등 부실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책임추궁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 노동자들이 반발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박진원 변호사는 "퇴출 절차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우리의 경우 미국·일본과 비슷한 회사정리절차법이 있다.그러나 그동안 채권단이 알아서 판단할 분위기가 아니었다.관치금융·정경유착 등에 따른 외부의 압력이 많았다.앞으론 이 문제를 분명하게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부.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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