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해녀 3대 이어가는 이임숙씨 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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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무슨 벨일이 랜(별일이라구). 할망(할머니)도 먹엉(먹고)살아야주게(살아야지). "

가파도의 원로 해녀 이임숙(李壬淑.78.사진 가운데)씨. '상군' 해녀의 영예를 얻은 지 이미 오래 전이고 은퇴할 나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현역이다.

젊은 해녀들이 배를 잡아타고 깊은 바다로 물질을 하러 간 사이 그녀는 갯가에서 보말.톳 따위를 걷어올린다.

나이가 들어 긴숨을 들이쉴 수가 없어 야트막한 갯가가 그의 밭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도 한달 1백만원에 가까운 수입이 있으니 혼자 사는 노인네의 수입 치고는 짭짤하다(제주여인들은 자식이 결혼을 하면 분가시키고 일하며 따로 사는 경우가 많다).

"그 양반이 괴기(고기)는 잘 잡아신디(잡았는데)…. " 해녀 이야기를 하기 앞서 15년 전에 사별한 남편의 기억을 잠시 되살리고는 이내 바다 이야기로 푹 빠져든다.

李할머니가 해녀일을 시작한 것은 11세 때. 해녀인 어머니를 따라 테왁에 몸을 맡겨 첨벙첨벙 헤엄을 배운 것이 시작이었다. 처녀 때는 놀이와 용돈을 마련하는 수단이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삶의 방편이었다.

저승의 문턱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테왁 그물에 발이 감겨 물속을 허우적거리다 다른 해녀의 도움으로 살아났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일제치하 생활이 어렵던 그녀 나이 19세 때. 그녀는 '돈벌이가 좋다' 는 소문을 좇아 제주해녀 2백여명과 함께 일본 쓰시마(對馬)섬까지 물질 원정을 다녀왔다.

유행처럼 따라간 일본 물질이었지만 청정바다 제주밭보다 수입은 커녕 물질 맛도 영 신통찮아 서너달만에 돌아왔다.

"뭐랭 골아도(뭐라고 말해도) 제주바당(바다) 만한 데가 없쥬(없지). " 李씨의 외동며느리인 김춘희(金春姬.56.사진 왼쪽)씨도 해녀다.

그녀 역시 17세 때부터 물질을 시작한 수준급 해녀. 金씨도 시어머니처럼 60년대 초 경북 구룡포까지 원정 물질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러나 시어머니와는 원정목적이 약간 다르다.

"돈도 돈이주(지)만 육지 구경이 너무 하고 싶읍디다게(싶더라고요). "

그녀도 시어머니처럼 가파도로 다시 돌아왔다. 엄마품 같은 가파도 앞바다가 육지보다 좋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바닷속 가득한 해산물은 가파도가 단연 한수 위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훤히 아는 물길과 바다가족들은 그녀를 영락없이 가파도에 붙들어맸다.

"언젠가 무거운 돌덩이를 어머니가 걷어내고 골괭이로 성게를 막 끄집어 냅디다게(내더라구요). 난 아맹(아무리)해도 안 되던디(되는데) 어떵사(어떻게나) 힘이 세고 해물을 잘 찾는지…. "

金씨의 남편 김재인(金載仁.58)씨는 "무슨 자랑거리라고 떠드냐" 며 아내를 윽박질렀지만 듣기는 싫지 않은 눈치다.

남편 金씨는 40년의 뱃일과 선주생활을 거쳐 이제 0.8t짜리 낚싯배로 가파도 근해에서 자리돔을 잡으며 소일하고 있다.

金씨 부부에게는 요즘 뿌듯한 일이 하나 생겼다. 해녀일이 싫다며 94년 결혼과 동시에 섬을 떠나 제주본섬 대정읍으로 삶터를 옮겼던 金씨의 큰 아들과 며느리 나금자(羅錦子.33.사진 오른쪽)씨가 98년 돌아왔기 때문이다.

"무사(왜) 또 와신지(왔는지). 물이 또 부른 모양이쥬(모양이야)…. " 그저 기쁘기만 한 표정이다.

대정읍내에서 구멍가게를 하던 羅씨 부부는 짭짤한 수입도 좋았지만 바닷일이 너무 그리웠다고 했다. 아들(33)은 다시 배를 탔고 羅씨는 가파도 최연소 해녀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녀는 시할머니나 시어머니처럼 해녀일이 좋아 그냥 하는 것은 아니다. 잠수어선을 타고 가파도 밖 1㎞ 공동어장까지 나가 수심 5~10m의 물에서 물질을 한다. 하루 물질로 캐 올리는 전복.소라는 70~80㎏, 수입은 10만원선, 많을 때는 하루에 20만원도 거뜬하게 챙긴다.

전량 일본으로 수출되는 가파도 해산물은 지난해 1백50t을 생산, 주민들에게 12억원의 수입을 안겨줬다.

가파도 어촌계장 김춘부(金春富)씨는 "솜씨가 뛰어난 해녀 몇몇은 한달에 5백만원쯤 챙긴다" 고 귀띔한다.

신세대 해녀 羅씨는 초등학생인 아이들 교육이 고민거리다. 학교문턱도 가본 적이 없는 두 선배와는 달리 초등교육을 받은 羅씨이기에 더욱 그렇다.

"여자벌이로 이만한 것이 어디 이수과(있습니까). 젊을 때 하영(많이) 벌어 아이들 교육만은 안뒤지쿠다(뒤지지 않겠습니다). "

3대에 걸친 가파도 며느리 해녀들의 명맥은 '끊어질듯'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가파도=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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