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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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기업의 구조조정이 급류를 타고 있다.

동아건설 채권단은 이 회사에 대한 워크아웃을 중단하기로 결정했고, 정부는 3일 추가로 퇴출시킬 기업의 명단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부실기업 퇴출은 한국경제의 구조조정의 핵심과제다. 이 어려운 과제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합의가 도출된 이 시기를 잘 활용해 상당수의 부실기업이 정리되기를 바란다.

1997년의 경제위기 이후 부실기업의 정리는 크게 보아서 화의를 포함하는 법원의 관리방식과 금융기관이 주도하는 기업개선작업, 즉 워크아웃의 두가지로 진행돼 왔다.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는 1백여개가 선정되었는데, 그 중에서 30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30개는 합병 또는 탈락 등으로 정리됐으며, 나머지 40여개가 아직도 남아 있다.

이번의 퇴출기업에는 이들 기업이 다수 포함되고, 추가로 새로운 부실기업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되려면 시장에의 진입과 퇴출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점은 그동안 누누이 지적돼 왔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특징인 시장의 경직성 때문에 마땅히 퇴출돼야 할 기업이 여전히 생산.판매활동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의 생산활동은 가치 창출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업을 해서 나온 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기업은 마이너스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런 상태가 계속되면 부채는 더욱 늘어날 것이며, 결국에는 기업이 도산해 채권단은 더 큰 규모의 부실채권을 껴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부실기업의 존속은 건전한 경쟁기업까지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은행이나 법원이 뒤를 봐주는 기업은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은 덤핑 판매를 일삼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건전한 기업도 그 싼 가격에 맞추다 보면 더불어 부실화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가장 무서운 경쟁사는 부도난 백화점에서 파는 부도난 기업의 상품'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실기업이 건전기업에 준 피해는 막대했다.

아울러 부실기업 내의 도덕적 해이도 극에 달했다. 금융기관의 긴급 수혈로 근근히 살아가는 기업이 정치인들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하는가 하면, 내부의 구조조정은 거의 하지 않고 방만한 경영을 계속해 온 기업의 사례는 무책임과 도덕적 해이의 표본이었다.

기업의 실패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 내재돼 있다. 많은 수의 기업이 창업되고 그 중에서 상당수는 문을 닫는 것이 경제의 혁신과 효율성을 가져다 주는 시장경제의 원리다.

예를 들어 어느 산업에서 시장수요는 5백인데 기업들이 과잉 설비투자를 해 생산능력이 7백이 됐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되면 시장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며, 가장 경쟁력이 약한 기업이 적자를 보게 될 것이다.

적자가 누적되면 한계기업은 결국 도산하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2백이라는 잉여시설은 폐기되거나 또는 경쟁사가 헐값에 사서 구조조정을 하면 그 산업은 다시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 만약 한계기업이 퇴출되지 않는다면 결국 그 산업 전체가 부실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대기업이 도산한다는 것은 물론 많은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일생을 회사를 위해 일한 임직원이 길에 나앉게 되고, 하청회사들이 연쇄부도를 맞게 되며, 채권자와 주주는 큰 손해를 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라는 인식이 없으면 대기업을 퇴출시키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지금이 제2의 경제위기라는 인식을 기회로 삼아 이번에 부실 기업을 다수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미래를 위해 부실기업에 대한 조기경보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 부실기업이 너무 커져서 경제.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주지 않도록 경고를 주는 장치는 제대로 작동하는 자본시장과 금융시장, 이사회제도와 지배구조, 그리고 투명한 회계제도 등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정착되면 정부 중심이 아닌 시장 중심의 기업 구조조정 메커니즘이 정착될 것이다.

정구현 <연세대 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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