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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포럼

먹칠당한 '역사의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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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중국과의 관계에서 가장 멋진 역사는 뭔가.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광개토대왕의 영토 확장, 안시성 승리, 삼국통일 때 김유신이 당나라 군대를 쫓아낸 것을 꼽을 수 있다. 역사의 금메달은 또 있다. 1988년 이후 10년의 역사다. 사상 처음으로 역전된 한.중 관계를 증언했던 기간이다.

그 시절 경제.기술력에서 중국을 확실히 눌렀다. 먹고사는 경쟁에서 상대가 안 됐다. 88 서울올림픽과 함께 베이징에 들어간 한국인들은 으스댔다. 자금성을 관광하면서 그 앞에서 주눅이 들었던 우리 조상의 설움을 씻어주었다. 상하이 푸둥에서 중국인에게 국력 신장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었다. 정치인은 칙사대우를 받았다. 중국과의 수천년 과거사에선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제 그 10년의 장면은 재현하기 불가능하다. 중국 넘보기는 끝났다. 중국의 경제력은 대국답게 커졌고, 외교 쪽도 한반도 전역에서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 10년은 포스트386세대(20~35세)엔 전설이고, 나중 세대엔 신화로 남을 것이다.

국제사회에선 국력 수준대로만 대접받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러시아에 이어 인도.베트남에서 깍듯한 대우를 받은 것은 과거 정권 때부터 쌓아온 국력 덕분이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도 그 시대 국력에 맞는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집권 초기엔 착각을 했다. 프랑스로부터 극진하게 대접받은 게 문민정부를 세운 덕분으로 믿었다. 한참 후에 프랑스의 정성이 테제베(TGV)를 살 만한 돈과 국력을 한국이 갖췄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TGV의 대가였던 외규장각 도서를 받지 못하고 국제 사기를 당했다는 느낌을 가질 무렵이다.

국력은 무엇인가. 바탕은 부국강병이다. 그 10년간 중국에서의 환대는 같은 동양인이어서가 아니다. 중국인이 우리의 민주화를 부러워해서도 아니다. 한국인이 그들보다 돈이 많았고, 만만찮은 국방력를 가졌기 때문이다.

88년 이후 10년의 국력을 만든 1등공신은 누구인가. 70,80년대 산업화 현장을 누볐던 기업인들이다. 그들은 서대문 밖 모화관에 들어선 중국 사신에게 꼼짝없이 고개를 숙였던 우리 조상의 한을 풀어줬다. 가난한 한국을 세계무대에 화려하게 데뷔시켰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기업인의 열정과 역사의 감수성은 386세대의 그것 이상으로 치열하고 순수했다.

부국강병은 민주화의 반대편이 아니다. 민주화 동반자다. 그게 이뤄져야 민주주의 기반이 단단해진다. 한때 아시아의 모범이었던 필리핀은 툭하면 민주화의 '피플 파워'를 자랑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엉성한 채 국제사회의 변방에 초라하게 머물러 있다. 시원찮은 경제에다 우리 같은 기업인들이 없어서다.

그런 기업인들이 노 정권 들어 유난히 내몰리고 있다. 반 기업정서는 위험수위를 넘었다. 부국강병이란 말은 사라졌다. 집권세력 내 일부 3류 좌파에겐 민주화 투쟁은 거룩하고, 산업화 성취는 잡일 정도다. 그들은 정경유착의 어두운 흔적을 부풀리고 일부 악덕 기업인의 사례만 강조한다. 그 빛나는 10년의 역사에 먹칠해 놓고 딴전을 피운다. 일류 역사를 만들어낸 도전과 모험의 기업정신은 그들에겐 거북스럽다. 내부 편 가르기와 적개심 키우기에 골몰하는 우물 안 개구리 체질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외국 순방 중 동행한 기업인들에게 "기업이 바로 나라다. 한국 대표는 대통령 아닌 한국 상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은 다수 기업인에게 믿음직하게 다가가지 않는다. 여기선 이 말 하고 저기선 거기에 어울리는 말로 바꾸는 '장의 논리'라고 의심한다. 노 대통령의 진심은 무엇인가.

박보균 정치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