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건설 자금지원 중단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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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부실기업 골라내기가 핵심인 기업 구조조정에 동아건설이 막판 변수로 등장했다.

지금까지 정부.채권단은 동아건설.현대건설.쌍용양회 등 이른바 '빅3' 의 퇴출은 경제에 충격이 큰 만큼 '살려둘 수밖에 없다 '는 입장이었다.

다음달 3일께 예정된 퇴출기업 명단에 빅3는 포함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예상을 깨고 30일 채권단은 동아건설의 신규자금 지원을 거부한데 이어 31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단 여부를 표결에 부치기로 했다.

이날 채권단의 신규자금 지원 찬성률이 25%를 간신히 넘긴 수준인 만큼 31일 서면 결의에서 동아건설은 사실상 퇴출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채권단의 갑작스런 입장 변경에는 최근의 상황 변화도 중요한 계기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개혁을 주도해야 할 금융당국의 도덕성이 시험대에 오르면서 개혁 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개혁의지를 다잡을 필요가 높아졌고 시범 케이스로 동아건설을 퇴출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을 것이라는 게 금융계 관측이다.

◇'정현준 게이트' 로 분위기 돌아서〓채권단은 이달 중순까지만 해도 동아건설을 회생시키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었다.

최근 열린 운영위원회에서는 신규 자금 3천4백9억원을 지원하고 이자도 3%로 깎아주는 안을 만드는 등 회생을 위한 준비작업이 진행됐다.

동아건설 역시 보조를 맞춰 1천5백명의 인력감축 등 강도 높은 자구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정현준 게이트로 금융감독원의 권위와 신뢰가 실추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간 금감원 눈치를 보느라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금융기관들이 조금씩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채권단 실무 관계자 사이에는 "동아건설을 살리려면 신규 자금 지원 등 채권단의 부담이 너무 커진다" "부실 기업을 퇴출시키지 않고 강력한 구조조정이 이뤄지겠느냐" 는 얘기가 오갔다.

여기에 최근 정현준 게이트로 개혁 의지가 시험대에 오른 금감원도 '원칙적인 구조조정' 으로 선회했다.

최근 금감원 내부에서는 이대로 가면 자칫 개혁반발 세력의 저항에 부닥쳐 연내 마무리 예정인 2차 금융.기업 구조조정이 통째로 물건너 갈 수도 있다는 위기의 목소리가 높았다.

◇ 퇴출기업 대거 늘어날 수도〓동아건설의 퇴출은 다음달 3일 예정된 부실기업 퇴출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당초 20여개 안팎으로 예상됐던 퇴출 기업수가 많게는 50~60개까지 늘어날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현대건설.쌍용양회 등 나머지 빅2에 대한 처리도 지금으로선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채권단 실무진의 얘기다.

금융계 관계자는 "그간 빅3를 모두 살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정치적 입장을 고려한 퇴출 판정은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며 "동아건설의 경우처럼 채권단 자율로 기업 퇴출이 결정될 경우 부실 기업 퇴출은 보다 원칙적으로 이뤄질 것" 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금융당국도 이같은 채권단의 입장 변화에 동조하고 나서고 있는 만큼 퇴출기업 판정의 강도가 크게 높아질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와 관련, 금감원 정기홍 부원장은 "동아건설에 대한 채권단 결정은 전적으로 채권단이 내린 것" 이라며 "앞으로 부실 우려 대기업 판정에서도 채권단 결정에 따른다는 게 금감원의 입장" 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채권단이 지원할 수 없다는 기업을 언제까지 끌고 갈 수 없다" 며 "채권단이 지원할 수 없다고 판정한 기업은 법정관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 이라고 덧붙였다.

이정재.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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