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의 악소리] 디스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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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10년 전과 현재의 음악이 크게 달라지게 된 계기를 세가지만 꼽으라면 개인적으로는 온라인의 활성화.매니어 문화.미디 작업이 떠오른다.

이 세가지는 음악을 만드는 방법에서부터 그 작품이 대중에게 알려지고 소비되고 평가받는 일련의 과정을 크게 변화시킨 '사건' 이라 할 만하다.

이러한 현상이 너무도 활성화되어 이제는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디스랩(Diss Rap)과 안티사이트이다.

이것들은 어찌보면 통신과 매니어 문화의 개인주의적인 분위기가 낳은 양식인데 이를 놓고 찬반양론을 벌이는 사람들 역시 온라인상의 네티즌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꽤 아이러니컬한 상황이기도 하다.

디스랩은 디스리스펙트 랩(Dissrespect Rap)의 줄임말로 어떤 특정 상대에 대한 비방과 조롱을 늘어놓는 랩의 한 패턴이다.

이 스타일은 미국의 유명 힙합 뮤지션들이 소재의 다양성을 위해 개인적인 원한이나 상대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는 것에서부터 발단됐다.

엘엘 쿨 제이, 캐니버스.퓨지스.투 팍.노터리어스 비아지 등 유명 랩 뮤지션들의 앨범에서 디스랩 한두곡쯤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남의 나라 얘기처럼 보이던 디스랩이 최근들어 국내 매니어들에게 큰 관심을 모으게 된 동기는 거침없는 입담을 보여주는 에미넴이 최고의 스타로 부상했기 때문. 디스랩이나 상대방에 대한 직접적인 비방이 앨범 수록곡이나 언론매체 인터뷰를 통해 이루어지는 외국에 비해 국내에서는 유독 통신.인터넷을 통해서만 쏟아져나오고 있다.

게다가 나름대로 활동을 해왔거나 알려져 있는 뮤지션이 발표하는 곡들이 아닌 순수 아마추어나 무명 뮤지션들의 곡이 대부분이다.

음악과 상관없이 인신공격에 가까운 랩이 떠돌아다닐 뿐 아니라 유명세 있는 뮤지션을 비난하여 사람의 이목을 끌어보려는 수작 아니냐는 비평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익명성을 장점(혹은 단점)으로 하는 온라인의 생리를 잘 이용한 모습은 인터넷상의 안티 사이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안티사이트는 안티 서태지 사이트를 다시 안티하는 사이트가 생겼을 정도로 그 숫자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안티들의 활동 이유는 서로 분분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안티 사이트가 본래의 역할에서 그치지 않고 원색적인 용어와 내용으로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사실에 있다.

비판문화에 오락적인 요소가 담겨 있는 아주 독특한 성격의 논리 싸움에서 시작된 디스랩과 안티사이트가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내용에만 치우친다면 그건 의미없는 말장난과 다를 바 없다.

진실은 왜곡된 채 순기능을 찾아볼 수 없는 공허한 감정싸움은 서로의 가슴에 흠집만 남겨놓을 것이다.

이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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