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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단발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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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군산의 장금도(張今桃·1928년생), 열두 살에 댕기머리의 동기(童妓)로 권번(券番)에 들어가 춤과 소리를 배웠고, 학습을 마친 후 쪽을 짓고 놀음을 나갔다. 열 살배기 아들이 춤추는 엄마 때문에 친구와 싸우자 춤을 접었고, ‘기생 티’를 벗으려고 파마를 했다. 그렇게 숨었지만 이미 퍼진 소문 때문에 결국 40여 년 만에 다시 쪽을 짓고 무대에 섰다.

대개 과거는 과장법으로 치장된다. 그러나 인력거 두 대를 보내야 나섰다는 춤 소문은 뜬소문이 아니었다. 1998년 10월, 선율을 한 올 한 올 세며 서서히 공기의 무른 곳으로 스며들어가던 ‘명무(名舞)초청공연’에서의 춤을 기억한다. “키가 줄어 길어진 치맛자락을 살짝 쥐어 들 때, 다가오던 시간이 외씨버선에 밟혔다. 정중히 찍힌 발자국은 하얗게 말라가고 일찍 디딘 자국은 바람에 들려 분분했다”고 썼다. 참으로 그럴 수 없는 춤이었다.

‘여무, 허공에 그린 세월’ ‘전무후무’ 등에 출연했고, 2008년 11월 ‘해어화 장금도’에 출연했는데, 그 춤판에서는 그해 죽은 아들을 위한 ‘살풀이춤’을 추었다. 자신에게는 외아들이지만 첩으로 간 그 집에서는 넷째라 군대에 갔고, 월남전에 파병되어 고엽제를 품고 와 다리를 절었던 아들이었다. 그 아들이 ‘전무후무’ 공연에 와서 꽃다발을 전해 50년 만에 화해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웃음도 잠깐, 아들이 먼저 간 것이다. 먼저 보낸 죄책감에 헝클어진 머리에 손이 갔고, 어느덧 버릇이 되어 밤새 긁었던 것이다.

지난해 3월에는 진주의 김수악이, 11월에는 서산의 심화영이 세상을 떠났다. 한시대를 풍미한 예기(藝妓)들이었다. “다들 죽어서 이제는 ‘저승 프로’가 더 재밌지.”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 ‘저승 프로’에 출연하러 간 것이다. 이제 남은 한 사람이 군산에서 단발령을 권유받은 것이다. 댕기, 쪽, 파마, 쪽. 할머니의 머리 모양은 통과의례요 춤의 연대기였다. 옛 법도를 배운 옛 분이라 춤이란 쪽을 지고 춰야 된다고만 생각한다. 그런즉 단발은 춤을 접는 것이고 춤은 후계도 없이 순장되는 것이다. 약도 쓰고 심심풀이 민화투라도 만지면서 버텨보자고 미봉책을 냈다.

지난해 11월 ‘KBS 스페셜’에서 공옥진 여사의 다큐멘터리가 방송되었다. 거기에 여사에 대한 인터뷰를 했는데, 아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문화재 지정을 물어왔다. 해가 바뀌니 신년 인사를 대신해서 캐물었다. 심지어 초등학교 동창 한 녀석은 대뜸 “야! 국가가 너무 하는 거 아니냐. 너 임마 똑바로 해!” 단숨에 죄인이 되어야 했지만 욕은 달콤했다. 이렇게 전 국민이 공옥진 여사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애가 탔다. 장금도 할머니는 이 엄동에 초야에 묻혀서, 단발령에 떨며, 홀로 가려움과 다투고 계신 것이다.

진옥섭 KOUS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