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준 게이트' 수사 급진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동방.대신금고 불법대출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한국디지탈라인(KDL) 정현준(鄭炫埈) 사장과 동방금고 이경자(李京子) 부회장을 이틀째 조사 중인 검찰이 이번 사건의 실체를 어느 정도 파악하면서 수사가 급진전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26일 "鄭씨와 李씨의 주장이 현재 서로 엇갈리지만 두 사람과 한국디지탈라인 및 금고 관계자 등을 조사한 결과 정.관계 로비부분을 제외한 불법대출 과정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고 설명했다.

검찰은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 동방금고가 李씨의 사채놀이에 동원되는 등 사실상 李씨의 개인주머니처럼 운영됐다는 鄭씨의 주장 가운데 상당부분이 설득력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다.

수사 관계자는 "鄭씨가 동방금고로부터 돈을 빌릴 때마다 李씨에게 자신이나 KDL 소유 주식 또는 어음.당좌수표 등을 담보로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 밝혔다.

검찰은 특히 李씨가 鄭씨에게 빌려준 돈의 대부분이 차명계좌를 통해 대출된 점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李씨가 차명계좌를 동원, 동방금고 돈을 빼낸 뒤 鄭씨에게 고리의 사채를 빌려주는 형식을 취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검찰은 그러나 사안에 따라서는 鄭씨도 불법대출에 공범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판단이다.

鄭씨가 순수한 벤처기업가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편법적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鄭씨는 이사회 의결도 거치지 않은 채 전환사채 자금을 빼내는가 하면 회사명의의 어음 등을 맡기고 빌린 돈을 회사명의의 계좌가 아닌 자신의 계좌로 입금한 사실도 드러났다.

鄭씨가 李씨와 짜고 돈을 빌려 개인적으로 유용했을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검찰은 그러나 이 사건의 주요 대목인 정.관계 인사 로비의혹에 대해서는 아직 특별한 단서를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26일 "이번 사건이 듣던 것만큼 큰 게 아닌 것 같다. 鄭씨는 '정.관계 로비리스트는 없으며, 로비를 벌인 적도 없다' 는 진술을 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鄭씨가 정.관계 인사와 관련해 무언가를 폭로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갔다는 것이다.

검찰은 아직 로비와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자료를 확보하지 못한 데다 鄭.李 두 사람이 서로 상대방에 로비책임을 떠넘기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기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