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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책vs책] 중독, 그 악마적 매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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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는 숭고하다
원제 Cigarettes Are Sublime
리처드 클라인 지음, 허창수 옮김,
문학세계사, 305쪽, 6천500원

알코올과 예술가
원제 Se Noyer Dans L’alcool?
알렉상드르 라크루아 지음, 백선희 옮김
마음산책, 172쪽, 1만1000원

“그것은 가장 오만하고 가장 매력적인, 또한 가장 자극적이고 사랑스러우면서 세련된 정부(情婦)이다. 그것은 자기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용납지 않으며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다. 그것은 도박이나 독서처럼 절대적이고 배타적이며 사나운 열정을 환기시킨다.”

위 문장을 인용해 놓고 ‘그것’에 대입할 만한 단어를 생각해본다. 어떤 화가가 작업중인 그림? 어떤 과학자가 연구중인 주제? 그것이 아니라면 보석? 식도락? 도박? ‘그’ 혹은 ‘그녀’? 아니다. 위 문장에서 정답은 ‘담배’다. 프랑스 시인이며 예술지상주의의 창시자인 테어도 드 밴빌이 1895년에 쓴 담배에 관한 에세이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한다. 헌데 이 구절은 다른 어떤 대상을 대입해도 참이 성립되는 중독에 관한 공식이기도 하다. 우리가 무엇에 중독될 때 그 대상은 한없이 미화되고 숭배되며 통제할 수 없는 인력과 열정을 폭발시킨다.

『담배는 숭고하다』와 『알코올과 예술가』는 우리 시대 대표적 중독 물질인 담배와 술에 관한 책이다. 두 책 모두 도덕적 당위나 사회적 캠페인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술과 담배가 어떻게 디오니소스적인 열정과 관련되는지, 그것이 창조적 개인의 삶에 어떤 유익함과 쾌락과 파괴를 초래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담배는 숭고하다』는 사르트르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그가 『존재와 무』를 쓸 때 얼마나 많은 담배 꽁초를 재떨이에 쌓았는지를 전하며, 사르트르에게 흡연은 주변 사물과 투사/동일시/내재화를 통하여 세계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철학적·문화적·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 담배가 처한 역설적 처지, 담배가 지닌 악마적 매혹성, 담배가 주는 위안의 기능 등을 점검한다. 담배를 든 여성의 손가락에서 빛나는 관능성과 험프리 보가트의 흡연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효과 등에서 담배가 은유하는 문화적 코드를 읽기도 한다.

『알코올과 예술가』는 “오늘날 문학은 술에 절어 있다”는 선언적인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작가들이 술을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술꾼을 등장시켜 술을 주제로 하는 글을 쓴다는 것이다. 술취한 상태에서 즉흥적 영감을 빌려 글쓰기를 했던 잭 케루악, 만취한 다음날 아침 그림 그리는 습관을 가졌던 프랜시스 베이컨, 하루에 6ℓ의 포도주를 마셔가며 글을 썼던 마르그리트 뒤라스 등의 삶과 예술이 소개된다.

두 책에 공통적으로,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영광의 인물은 보들레르다. 그는 『알코올과 예술가』의 첫 장을 장식한다. 글쓰기와 폭음, 엄격함과 산만함, 고결함과 추악함 사이를 오가는 삶을 살았던 그는 늘 취해 있기를 갈망했다. 그는 ‘술꾼’이라는 희곡에서 무능하고 부도덕하고, 또 바로 그것을 끝장내기 위해 악행을 저지르는 술꾼의 심리를 잘 그려내고 있다. 물론 담배를 찬양한 시도 남겼다. ‘일치’라는 시에서 담배 연기의 ‘무한한 팽창’이 경험과 감정 사이, 이질적인 감정과 감정 사이를 소통, 결합하는 힘을 갖는다고 노래했다. 그에게는 술도 담배도 ‘악의 꽃’일 뿐이었다.

중독의 심리적 근간은 의존성이고, 의존성은 영·유아기에 엄마로부터 충분한 정서적 보살핌과 공감을 나누지 못한 사람들이 환상 속에 만들어둔 공생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밴빌이 담배를 찬양하는 언어들이 곧 환상적인 연인에 대한 찬사이며 ‘충분히 좋은 엄마’에의 환상과 같은 이유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앤서니 기든스의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은 현대인의 성과 사랑 중독에 대해 고찰한 책이다. 그는 술과 담배뿐 아니라 중독으로 인정되는 항목들이 지난 몇 년 새 폭발적으로 늘어 약물·음식·일·쇼핑·운동·도박·속도감 등이 첨가되었다고 한다. 성과 사랑이 배제된 ‘관계’ 자체에 중독되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중독을 치유하는 방법은 정신의 지층을 재배열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저 무의식에 깃든 영·유아기의 결핍을 인식하고 직면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독을 치유하기 힘들 때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부정적인 중독을 긍정적인 중독으로 바꾸는 방법이다. 알코올 중독을 운동 중독으로, 흡연 중독을 독서 중독으로. 앤서니 기든스는 ‘사랑 중독’도 ‘친밀성’의 차원으로 바꾸라고 제안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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