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한국어 공부중] 3. 한국어 보급 확산을 위한 숙제<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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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루앙대에서 한국어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 지난 6월 학기말 시험을 보는 장면. 루앙대의 한국어 강좌는 이 시험을 끝으로 폐강됐다. [사진 제공=프랑스 루앙대]

프랑스 루앙대는 4년 동안 개설했던 한국학 강좌를 올 가을 학기부터 중단했다.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이 지원을 끊었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던 마른라발레 대학 한불언어문화연구소의 임준서(43)소장은 "그동안 학생이 40명까지 늘어 막 꽃이 피는 듯했는데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이종안 학진 해외한국학지원사업 담당은 "예산이 부족한 데다 국가당 1개 기관만 지원하는 원칙에 따라 올해는 프랑스에서 새로 신청한 라루셀 대학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학진의 한국학 사업의 연간 예산은 15억원. 학술연구 지원금을 빼면 강사 파견 등 한국어 지원 예산은 7억~8억원이다. 이 담당은 "전세계 70여 기관에서 한국어 강사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예산은 거의 그대로여서 연간 26명만 보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정부 정책 난맥=해외에서의 한국어 보급 관련 업무는 한국국제교류재단(외교통상부 산하).한국어세계화재단(문화관광부).학진(교육부).한국교육과정평가원(교육부).국립국어연구원(문화관광부) 등 여러 정부 기관에 분산돼 있다. 부처 이기주의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어 능력시험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한국어 교사를 위한 한국어 교육능력 인증시험은 한국어세계화재단이 주관하는 등 업무가 곳곳에 나눠져 있다.

남기심 국립국어연구원 원장은 "인건비.연구비 등 같은 사업이 중복 투자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가뜩이나 빠듯한 예산에 체계적인 통합 관리가 안 돼 효율성이 더 떨어지는 것이다. 중국이 1987년 장.차관급으로 '국가 대외 한어교육 지도팀'을 구성, 체계적으로 중국어 보급에 나선 것과는 대조적이다. 프랑스에선 58개 고교가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한국어를 채택한 고교는 없다.

◆부실한 인프라=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은 폭발적으로 늘고, 수준이 높아지고 있지만 교재.평가 방법 등은 초보적이다. 박영순 한국어세계화재단 이사장은 "한국어 교재는 300여종에 이르지만 대부분 초급용이고 영역.수준별로 세분화한 고급 교재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주행 중앙대 국문과 교수는 "중국 사업가, 일본의 한류 팬 등 학습자에게 맞는 교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인을 위한 한국어 교재를 펴낸 바 있는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도쿄외국어대 교수는 "대부분의 한국어 교재가 한국어로만 돼 있어 일본인들이 배우기 힘들고 쉽게 포기한다"고 말했다. 비영어권의 한국어 교사들은 "현지어로 된 교재와 시청각 교재를 개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미얀마에선 현지 교사들이 현지어로 된 교재를 만들어 쓰고 있다. 박영순 이사장은 또 "외국인용 주요 단어 목록이나 언어권별 한국어 사전 등도 만들고, 한국어능력시험도 문제은행으로 만들어 문제를 표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영민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는 "외국 유학생을 위해 토익 등과 같이 표준화된 시험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진한 한국어 교육방법=서울대가 2002년 대학원에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육'과정을 신설, 한국어 교육이론을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어를 외국어로 가르치는 교육 기본서도 제대로 없는 실정이다. 노마 교수는 "문법론.어휘론 중 일부는 도쿄외국어대가 한국보다 낫다"고 자부한다. 그는 "한국인은 '~하고~''~해서~' 등과 같이 기초적인 것이면서도 매우 중요한 것을 당연히 다르다며 넘어갈 때가 많다"며 "우리는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어를 연구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일본어와 비교해 가면서 연구하는 체계를 갖췄다"고 말했다.

양승윤 한국외국어대 외국학 종합센터 원장은 "해외에서 한국어.한국문화를 가르치는 현지 교수 인력을 서둘러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남아 10개국의 주요 17개 대학으로 구성된 '아세안 대학 네트워크'가 한국 관련 강좌를 늘리려 하고 있지만 현지 교수 인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국어 교사들도 좀더 체계적인 '한국어 교습 방법'을 익힌 후 파견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특별취재팀>

홍콩=이양수, 중국=유광종, 도쿄=예영준.김현기, 베를린=유권하, 파리=박경덕,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오대영.정용백.백일현.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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